F-16보다 낫다던 중국 전투기…유럽·중동서 판정패 당했다 [박수찬의 軍]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은 세계 각국에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면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방위산업도 마찬가지다. 잉룽 계열로 대표되는 무인기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량이 판매됐고, 드론 공격을 저지하는 안티 드론 체계나 지대공미사일도 중동 등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전투기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J-10C와 JF-17 등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공략하면서 수출을 시도하지만, 미국과 유럽 기종에 밀리고 있다. 군사적 문제와 정치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중국 공군 J-10C 전투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항공무장·시장수요 ‘발목’

 

중국은 옛소련 미그-19를 복제한 것을 시작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며 전투기 개발을 해왔다. J-10C와 JF-17도 이같은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다.

 

1990년대 처음 등장한 J-10C는 개량을 거듭해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전자광학추적장비(EOTS), 레이더추적탐색기(IRST) 등의 첨단 전자장비를 갖췄다. 중국 주장대로라면 미국 F-16 최신형과 맞먹는다.

 

JF-17은 공동개발국인 파키스탄이 F-16보다 낫다는 뜻에서 JF-17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최신 블록3 버전은 AESA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와 각종 무장을 갖췄다. “무난히 쓰기에 좋은 기종”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두 기종 모두 수출은 지지부진하다.

 

J-10C는 파키스탄이 36대를 샀고, JF-17은 공동개발국인 파키스탄 외에 미얀마, 나이지리아에 일부가 팔린 정도다. F-16을 능가한다는 주장이 무색할 정도다.

 

현대 전투기는 다양한 종류의 항공무장을 장착해야 임무에 맞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중국 공군 J-10C 전투기들이 지상에 주기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16과 그리펜, 타이푼을 비롯한 서방 전투기들은 필요에 따라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무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

 

중국 전투기는 다르다. J-10C는 PL-10·12·15 단거리 및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YJ-91 대레이더 미사일, C-802 대함 미사일 등을 탑재한다. 모두 중국산 무장이다. JF-17은 파키스탄 무장이 일부 추가된다.

 

중국 항공무기체계를 처음 도입하는 국가가 중국 전투기를 사면 중국산 항공무장와 운용체계도 함께 들여와야 한다. 

 

기체 가격은 저렴해도 무장, 부품, 교육 및 군수지원체계까지 합치면 실제 구매가는 훨씬 비싸질 수 있다. 기체 가격도 성능개량에 따른 전자장비 추가 등으로 이미 단가가 상승한 상태에서 가격 인상 요소가 더해지는 셈이다.

 

중국산 항공무장을 타국 제품으로 대체하는 것도 어렵다.

 

미국·유럽은 정치적 문제로 불가능하다. 남아공, 러시아, 튀르키예 항공무장은 기술적 리스크가 적지 않다.

 

무장 장착에 따른 공기역학적·기계적 특성, 관련 항공전자장비와의 통합,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도입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JF-17 도입 가능성이 제기됐던 아르헨티나가 중고 F-16 구매로 돌아서고, J-10C 구매가 거론됐던 태국이 스웨덴산 그리펜 도입을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양국 모두 서방 무기체계를 쓰고 있는데, 중국산 전투기를 들여오면 모든 관련 무장과 부품을 새로 사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는 셈이다.

 

파키스탄 공군 JF-17 전투기 편대가 비행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세계 전투기 시장 추세 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스텔스기와 더불어 무장탑재능력이 우수하면서 지상 공격력이 강력한 쌍발 엔진 탑재 대형 기체가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처럼 전선을 돌파, 빠르게 진군해오는 대규모 적군을 상대하려면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고강도 공중 폭격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많은 정밀유도폭탄과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한 채 오랜 시간 동안 먼 거리를 날아가는 전투기가 적합하다.

 

1972년 첫 비행을 한 미국 보잉 F-15의 최신형인 F-15EX가 여전히 관심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F-35의 부족한 무장탑재량을 보완하고자 개발된 F-15EX는 13t이 넘는 무장탑재량을 지녔다. 수십년간 실전에 쓰이면서 기술적 신뢰성도 축적됐다.

 

한 번의 임무 비행에서 공대지 타격, 공중전 등의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인도네시아가 도입을 추진 중이며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폴란드도 잠재적 도입 국가로 거론된다.

 

정치적 문제로 미국산 무기 도입을 꺼리는 곳에선 프랑스 닷소 라팔이 ‘픽’을 받는다. 라팔은 크기는 작으나 무장탑재량이 9t에 달한다.

 

프랑스 닷소가 만든 전투기들은 예부터 기체는 작으나 무장탑재량은 컸다. 라팔의 경우 동급인 유럽 에어버스 타이푼 전투기보다 무장탑재량은 더 많다.

 

라팔은 이슬람국가(IS) 등에 대한 폭격으로 실적을 쌓았고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크로아티아 등이 도입했다.

 

포르투갈·루마니아 공군 F-16 전투기들이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 J-10C와 JF-17 무장탑재량은 각각 7t과 3.5t. F-15EX와 라팔에 크게 못미친다. 최대한 많은 무장을 싣고 날아올라 적 지상군을 초토화하고 공중전도 벌이기를 원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가난한 제3세계 국가에선 JF-17보다는 슈퍼 투카노 등의 터보프롭기나 제트훈련기를 개조한 경공격기가 선호된다. 전면전보다 내전이나 테러조직 위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2021년 JF-17 3대를 샀던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 반군 소탕을 위해 이탈리아 M-346의 경공격기 버전인 M-346FA를 구매했다.

 

중국이 새로운 기종을 시장에 추가로 출시하거나, 대대적인 신규 투자를 통해 러시아·남아공·튀르키예·파키스탄 등의 항공무장을 장착할 수 있도록 체계통합을 해야 전투기 시장에서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변수도 무시 못해

 

미국과 유럽 전투기가 국제 시장을 선점해 높은 신뢰를 얻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신뢰도나 평판이 낮은 중국산 전투기는 경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적 문제는 이같은 문제를 더욱 부추긴다. 전투기 수입은 공급국의 강점을 받아들이고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중국 전투기 구매는 도입국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 신냉전 체제에서 중국 편에 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가 실제로 드러난 것이 세르비아와 사우디다.

 

세르비아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중국의 대외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유럽의 대표적 친중 국가다.

 

유럽 최초로 중국산 잉룽 드론과 HQ-22 지대공미사일 체계를 구매했다. 중국은 지난 4월 HQ-22를 세르비아에 배송하고자 자국산 Y-20 대형 전략수송기 6대를 투입했다.

 

중국의 L-15 훈련기가 장착 가능한 무장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시진핑 중국 주석도 지난 5월 세르비아를 방문했다. 이같은 관계 때문에 세르비아가 옛소련 미그-29를 대체하는 사업에서 중국산 J-10C가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라팔을 선택했다. 세르비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20년 세르비아에 HQ-22 미사일을 구매하지 말라며 경고하면서 세르비아가 EU 등 서구 동맹에 들어오려면 무기를 서구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친중 국가지만 미국과 나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르비아는 저렴한 중국산 기종보다는 프랑스의 라팔을 선택, 중립적인 태도를 기울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는 중국산 탄도미사일과 드론, 대(對)드론체계 등을 도입한 ‘큰손’이다. 

 

중국은 지난해 3월 사우디와 이란을 중재해 양국 관계를 정상화했다. 시 주석은 지난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고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를 심화하기로 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시 주석을 환대했다.

 

이를 두고 중국산 J-10C나 5세대 스텔스기를 사우디가 구매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지난해 12월 프랑스 닷소와 라팔 도입 협상에 들어갔다.

 

중국 공군 J-10C 전투기(왼쪽)와 JH-7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우디가 빈 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 미국과 티격태격하지만, 미국 대신 중국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 왕실의 가장 큰 현안은 안보다. 예멘 후티 반군이 쏘는 이란산 미사일과 드론은 유전과 정유시설을 위협한다. 관계를 정상화했지만, 이란의 위협은 여전하다.

 

사우디 주요 시설을 지키는 방공망은 패트리엇(PAC-3)을 비롯한 미국산 미사일과 레이더다. 공군 전투기도 다수는 미국산 F-15이며, 지원기도 미국산 조기경보기와 수송기 등이 많다. 

 

사우디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협력을 늘릴 수는 있지만, 안보 문제를 감안하면 ‘레드라인’은 명확하다. 중국 전투기보다는 미국 또는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유럽 전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정학적 문제도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말레이시아는 지난 2019년 경전투기 12대를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 FA-50과 더불어 중국 L-15 등이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2021년 6월 중국 군용기 16대가 말레이시아 해상구역과 비행정보구역을 넘어 들어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을 비행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후 지난해 FA-50이 최종 선정됐다.

 

중국은 자국산 군용기가 정치적 조건에 제약을 받지 않고, 고품질과 비용 효율성을 제공하므로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적은 아직까진 크지 않다. 서방의 시장 선점과 기술적 리스크, 지정학적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신냉전 체제가 한층 강화되는 국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전투기 수출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