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라트비아는 거인의 나라다. 약 180만명에 불과한 인구 가운데 여성의 평균 신장이 170㎝로 세계 1위다. 남성도 180㎝가 넘는 수준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에스토니아에 이은 세계 4위에 해당한다. 남한의 60% 정도 되는 면적의 국토는 절반가량이 숲으로 덮여 있다. 북유럽 나라들 중에서도 자연 환경이 깨끗하고 안전한 국가로 손꼽힌다.
라트비아는 이웃나라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흔히 ‘발트 3국’으로 불린다. 덩치가 작은 국가들이다 보니 과거 독일, 폴란드, 스웨덴, 제정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 사이에서 각축장으로 전락해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2차대전을 계기로 소련에 강제 병합됐다가 1991년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의 결과로 독립을 되찾은 역사는 세 나라가 똑같다.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 탓에 시련을 겪은 점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한국과 라트비아는 라트비아 독립 직후인 1991년 10월 수교했다. 라트비아가 2015년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한 이후에도 한국은 한동안 주(駐)스웨덴 대사가 라트비아를 겸임하다가 2019년에야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양국 관계에서 라트비아가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한국은 라트비아에서 다량의 목재와 광물성 원료, 농산품 등을 수입한다. 우리 기업의 라트비아 진출도 활발해져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 현대차·기아의 자동차,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등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주한 라트비아 대사로 내정된 야니스 베르진스 지명자가 2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6·25전쟁 유엔군 전사자 명비에 헌화했다. 전쟁 당시 라트비아는 국권을 잃고 소련에 점령된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으로 간 라트비아인들이 미군 소속으로 한반도에서 싸웠고, 그중 4명이 목숨을 잃어 미군 전사자 명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베르진스 지명자는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에게 “타국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동유럽계 군인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업회와 협력해 그들의 활약상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백 회장도 “한국·라트비아 모두 강대국들 사이에서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나라”라며 상호 협력과 유대 강화를 약속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두 나라의 우정이 한층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