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중 자백한 공범… 대법 “피고인이 부인하면 증거로 못 써”

공범이 수사과정에서 자백했더라도 피고인이 재판에서 이를 부인하며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재차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2년과 약물중독재활교육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명령, 추징금 15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김씨는 2023년 3∼4월 사이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와 2022년 12월 필로폰 0.03g을 15만원을 받고 A씨에게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투약 혐의는 1·2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했지만 판매 혐의에 대해서는 두 법원 판단이 갈렸다.

 

쟁점은 “김씨에게서 필로폰을 구매했다”고 말한 A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김씨가 부인할 경우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였다. 이런 A씨의 ‘자백’은 검찰이 김씨를 기소한 주요 근거이기도 했다. 2022년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312조)과 대법원 판례는 경찰관과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때만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의자 본인의 조서뿐 아니라 공범의 조서도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1심 법원도 A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A씨 마저 ‘수사기관에서 착각하여 진술했다’며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거래를 뒷받침할 만한 거래 내역이 없는 점 등도 고려했다. 필로폰 매도 부분을 무죄로 본 법원은 투약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올해 5월 2심 법원은 이와 달리 필로폰 판매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A씨가 당초 수사기관에서 필로폰 매매에 관해 한 진술이 일관되고, 꾸며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고 구체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또 김씨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자신의 지인을 통해 A씨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했다고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법리를 유지할 경우 권력형 범죄, 조직적 범죄 등 공범의 진술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사안에서 회복 불가능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며 “공범이 허위로 진술을 번복할 경우 법원은 허위 진술만을 기초로 사안을 판단해야 하므로 법관의 합리적 판단에 중대한 제약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에 대검찰청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끌어냈다”며 당시 공판 검사를 우수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개정 형사소송법 취지와 기존 판례에 따라야 한다며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변호인이 피의자신문조서에 관해 내용 부인 취지에서 ‘증거로 사용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형사소송법 312조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후 증거로 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향후 파기환송심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A씨의 필로폰 매도 부분은 무죄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