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2일 새벽 별세했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학생·노동·시민운동에 헌신한 그는 구소련 붕괴 후 제도권으로 간 재야의 동지들과 달리 “내가 추구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진보정당 운동을 고집했다. 그러나 총 7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린다.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는 가난했다. 4남 2녀 중 막내인 고인만 겨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대 법대 진학 후 민청학련 및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 등으로 12년간 수배생활을, 9년간 옥살이를 했다. 간첩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수배생활과 옥살이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의무로 여겼다. 돈으로, 그것도 국민이 낸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명예는 뭔가”라며 지원을 사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