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재판관 추천·합의 관행 지켜 헌재 기능 마비 막아야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뉴스1

다음 달 17일 임기가 끝나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의 후임자 추천권을 놓고 여야 입장이 팽팽하다. 국민의힘은 2000년 이후 이어진 관례대로 여야가 각각 1명을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합의로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과반인 171석을 내세워 2명을 추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재판관 3명은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선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추천이 늦어져 이러다가 헌재 기능이 마비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재판관 추천권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는 헌재 결정이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하면 아예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이나 정당 해산 등이 정당한지, 법안이 헌법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등이 헌재에서 결정된다. 지금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심판과 8건의 위헌법률심판이 헌재에 계류돼 있다. 그런 헌재의 재판관 9명 구성이 문재인정부 시절 진보 성향 6명에서 윤석열정부 들어 중도·보수 성향 6명으로 바뀌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1명이라도 더 추천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이 국회 몫 재판관 3명 중 2명을 추천하겠다고 하는 건 억지다. 이영진 재판관을 추천한 옛 바른미래당 몫이 문제인데, 국회의 재판관 선출 방식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다. 헌법 111조는 재판관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면서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 여야가 합의하도록 한 취지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2000년 이후 이어온 합의 관행대로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1명은 합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절대다수 의석 정당을 배려한다면 민주당이 추천권을, 국민의힘이 비토권을 갖는 절충 방식을 고려해 봄 직도 하다.

국회 추천이 늦어질 경우 헌재 선고가 두 달 넘게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헌재는 최근 이은애 재판관 퇴임과 후임 김복형 재판관 취임, 재판관 3명 교체를 참작해 이달 선고 일정을 잡지 않았는데, 다음 달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헌재 홈페이지 기록상 2002년 9월 이후 두 달 연속 선고를 못 한 건 2017년 1, 2월과 2018년 9, 10월뿐이다. 헌재가 매달 200건 안팎의 사건을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다.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한시바삐 헌재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