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산업 현장은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직원이)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할 여유는 없습니다.”
소프트웨어(SW) 공학 컨설팅 중소기업 씽크포비엘의 박지환 대표는 지난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씽크포비엘은 외국인 유학생 채용 우수 사례로 선정돼 지난달 27∼2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주관한 국내 최대 글로벌 일자리 채용박람회 ‘2024 글로벌 탤런트 페어(GTF)’에 초대됐다.
2016년부터 외국인 유학생 영입에 나선 씽크포비엘은 최근 8년 연속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했고, 지난해 두 자릿수인 10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직원으로 맞이했다.
박 대표는 “많은 분이 왜 외국인을 채용하느냐고 묻는다. 우린 ‘이 회사에서 함께 열심히 일해줄 사람’을 찾을 뿐, 직원의 국적을 구별하지 않는다”며 “또 현실은 인구감소와 여러 사회적 이유, 한류 열풍 등으로 외국인 직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中企 전문인력, 외국인 비중 커질 것”
씽크포비엘의 경우에서 보듯 ‘외국인 없인 중소기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출산이 낳은 인구 절벽, 청년들의 대기업 선호 등으로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흔히 현장직이라 불리는 단순노동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통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된다. 24일 법무부 출입국통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시작된 2020년과 지난해의 취업자격별 체류외국인 현황을 살펴보면 전문인력의 증가율이 단순기능인력 대비 약 4배에 달했다. 단순기능인력 체류외국인은 2020년 40만9039명에서 지난해 45만425명으로 10.1% 늘어난 반면, 전문인력은 4만3258명에서 지난해 7만2146명으로 40% 증가했다.
중소기업의 R&D 인력난을 외국인 전문인력이 채우는 추세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국내 취업 시 전문인력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 유학생의 증가율은 같은 기간 47.7%(15만3361명→22만6507명)로 가장 높았다.
박 대표는 최근 중소기업에 부는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 채용 바람은 단순히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외국인 직원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직률의 차이가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2년 전까지 외국인 직원의 퇴사율은 0%였다. 이후에도 결혼, 자녀의 국적 문제, 가족의 해외 취업 등 불가피한 이유로 아쉬운 퇴사가 있었을 뿐, 외국인 직원들은 거의 퇴사하지 않았다”며 “반면 한국인 직원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구직 기회를 가지고 있어 이직률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회사로선 오랜 기간 자신의 직무에서 경험을 잘 축적해 나가는 직원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도 외국인 유학생의 강점을 포착했다. 타국까지 와서 일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경력을 쌓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등 자기 발전에 대한 의욕이 매우 높은 편이라서 업무를 향한 열정, 집중도가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보다 임금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온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급여가 강력한 동기가 됐다.
◆‘제2의 인생’ 위해 한국 택한 외국인
그렇다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왜 한국에서 일하고 싶을까.
GTF에서 구직에 나선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 3명은 하나같이 미래 산업의 유망성, 한국 문화의 매력에 이끌렸다고 밝혔다.
현재 대전 우송대에서 인공지능(AI) 공학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다니엘 오헤다(캐나다·멕시코 이중국적)는 왜 한국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한국을 ‘가장 좋은 일자리 기회를 가진 5대 국가’ 중 하나로 꼽은 외신 기사를 내밀었다.
기사는 한국에 대해 “삶과 성공에 대한 열정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나라”라며 “선진국 중 가장 긴 근로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만큼 열심히 놀 줄 아는 나라”라고 소개했다.
충남 아산 선문대에서 리서치 과정에 참여한 뒤 광주 조선대에서 딥러닝·AI 석사 과정 중인 쉘리 바츠퍼이(인도)는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다. 특히 전공 중인 딥러닝과 AI 분야에서 한국은 확실한 강점이 있다”고, 고려대 AI 석사과정을 마친 윙 람 목(홍콩)은 “K팝으로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결국 석사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석사는 단순한 ‘졸업장 늘리기’가 아니었다. 석사를 마치면 한국에서 직장을 구해 최소 5년은 머물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 정착까지 생각하는 등 앞으로의 인생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고 싶어했다. 한국어에 능통한 목은 외국인 유학생 전형뿐 아니라 한국인과 경쟁하는 공채도 지원해 한국에서 경력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는 등 국내 취업에 적극적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처음부터 한국의 중소기업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타지에 정착하기 위한 선결 과제가 ‘좋은 직장’이다 보니 안정적인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국내 구직자들과 똑같았다. 인터뷰 중 이들이 예시로 든 회사들은 4대 그룹(삼성, SK, 현대, LG)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이들에게 회사 규모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였다. 오헤다는 “산업 유망성을 보고 한국에 온 만큼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라며 “회사 크기보단 업무 문화가 잘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쿼터제, 비자 기준 바뀌어야”
중소기업은 R&D를 위해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을 필요로 하고,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선 제도적 미비함이 매칭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박 대표는 GTF에서 직접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외국인 채용 관련 애로사항으로 고용쿼터제를 언급했다. 그는 “외국인 20% 고용 한도를 규정한 쿼터제가 너무 획일적으로 적용되다 보니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한국인 직원이 퇴사해서 고용비율이 초과되면 기존에 일하던 외국인 직원이 퇴사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고용비율에 포함되는 비자를 가진 사람이 입사하는 순간 기존에 고용비율에 포함되지 않던 직원들도 비율에 포함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외국인 비자 기준도 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쿼터제에 해당하지 않는 E-3(연구직) 비자의 경우 기술 분야 전공자만 받을 수 있는데, 요즘 같은 융복합 시대에는 기술 연구에도 인문학 전공자가 필요하다”며 “현재 AI가 법과 윤리를 지킬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기준을 수립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이를 위해선 철학, 법학, 언어학, 사회문화 등 다양한 인문학 전문가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신속하고 일관성 있는 행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예약에 빠르면 한 달, 길면 두 달이 소요되는데 이 사이 직원의 비자 연장이 만료돼 퇴사 후 재입사하는 해프닝이 올해만 두 번 있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비자 상담원들의 상담이 매번 다르고, 같은 비자 유형을 접수하더라도 공무원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달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