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익 1% 아트테크’라더니 폰지사기… 소비자 투자 주의보

미술품 투자로 원금 보장·고수익 유혹
투자금 ‘돌려막기’로 905억원 가로채
갤러리 회장 등 일당 14명 검찰 송치

포털 등 미허가 업체들 불법광고 난립
한국 미술 투자 시장 신뢰도 추락 우려
“실물 존재 여부·가격 진위 등 확인해야”

‘미술품에 투자하면 매달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유인한 뒤 900억원대 폰지 사기를 일으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일어난 미술투자 열풍에 힘입어 이른바 ‘아트테크(아트+재테크)’ 전문 갤러리가 시장에 우후죽순 쏟아졌는데, 일부의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미술품을 담보로 원금보장과 고수익을 내걸고 있는데, 사기 피해에 대한 우려는 물론 향후 한국 미술 투자 시장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24일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갤러리 회장 40대 정모씨 등 1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정씨를 비롯한 갤러리 간부 3명은 지난달 29일 구속 상태로 송치됐고, 영업 매니저 등 11명은 이달 13일 불구속 송치됐다.

정씨 일당은 2019년 6월3일부터 지난해 10월19일까지 청담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관계 법령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않고 미술품 투자 상품을 파는 것처럼 꾸며 피해자 1110명으로부터 약 905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연령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고, 적게는 인당 100만원에서 많게는 16억원까지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에게 허위로 판매한 미술품은 3000여점에 달한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일당은 미술품에 투자하면 해당 작품의 전시·임대·간접광고(PPL)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 월 1%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광고했다. 또 계약기간이 끝난 작품을 갤러리에 반납하면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갤러리는 실제 이 같은 수익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후순위 투자자의 투자금을 선순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일명 ‘돌려막기식’ 폰지 사기였다. 남은 투자금은 정씨의 개인사업 대금, 갤러리 영업 매니저들의 수당 등으로 사용됐다.

지난 2023년 경찰이 압수수색한 청담동 갤러리 수장고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정씨 등은 투자 계약을 맺을 때 실물을 확인하는 고객이 적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별다른 수익이 없는 무명 작가들에게 접근해 ‘작품을 팔아주겠다’며 그림 가액의 1%를 주고 이미지 파일을 전시 목적으로 받았다. 이 파일을 가지고 갤러리가 작품을 보유하는 것처럼 고객을 속였고, 작가들에겐 판매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또 작품 가격을 부풀리기 위해 갤러리 전속 작가 7명에겐 한국미술협회(미협)로부터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호당가격확인서’를 발급받도록 종용하고, 미협 심사에서 떨어진 작가들의 작품은 마치 해외에서 고가에 거래된 것처럼 5000만원, 1억원 상당의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보여줬다.

경찰은 서울, 광주, 충남 태안 등 전국에 흩어진 91건의 피해 신고 사건을 병합해 집중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갤러리·수장고·피의자 주거지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들의 자택에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을 압수하고, 범죄 수익을 추적해 약 122억원을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했다고 밝혔다.

 

최근 아트테크를 내세워 그림을 팔던 갤러리가 미정산 사태를 일으키면서 사실상 영업이 중단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A갤러리는 청담동 갤러리와 유사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원금 보장과 연 7∼9%의 수익을 약속하며 미술품을 팔았는데, 올해 초부터 고객들에게 약속한 수익금을 지불하지 못하면서 피소당했다. A갤러리 또한 신규 고객을 유치해 기존 고객에게 수익금을 지불하는 폰지 사기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세계일보 9월9일자 7면 참조> A갤러리 김모 대표는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해외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A갤러리와 관련해 경찰에 접수된 피해 금액은 최소 50억여원으로, 현재도 새로운 피해자의 고소장이 계속 접수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 2023년 경찰이 압수수색한 대표 정모씨 등 피의자들 자택에서 압수된 사치품과 현금 다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제공

이처럼 아트테크를 내세운 사기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포털 등에는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을 내세운 미허가 업체들의 불법 광고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

허가 없이 원금과 수익 보장을 내세우면서 투자금을 유치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이다. 취재 결과 수도권에서 영업 중인 복수의 갤러리는 ‘계약 종료 시 투자금 100% 환불’, 연 8∼12%의 고수익을 내세워 홍보하고 있었다. 작품 경매 등이 이뤄진 적이 없어 시세 정보가 전무한 국내 무명 작가들의 그림을 미협 호당가격증명서를 내세워 고가에 판매하는 방식은 경찰이 조사 중인 갤러리와 동일했다.

 

광고에서 원금 보장을 내세운 갤러리 3곳을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모두 통신판매업, 출판업 등 상법상 일반회사로 등록돼 있었다. 이들 업체가 원금을 보장한다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여기에 투자해 피해를 봤을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도 없다.

온라인상에서는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내세운 소규모 아트테크 업체들의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통신판매업 등 상법상 일반회사가 원금 보장을 내세우며 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업체 홈페이지 캡처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동산 같은 경우 가격이 투명하고 누구나 가격 검증을 할 수 있어 조각투자를 하더라도 위험성이 작지만, 미술품은 그 반대라 구조적으로 사기가 발생하기 쉽다”며 “소비자들도 이 점을 유념하고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술품 투자 시) 실물 존재 여부와 가격 확인서의 진위를 반드시 확인하고, 전문가 또는 기관의 감정 등을 거친 후 투자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며 “시중 은행권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원금 보장 상품의 투자자를 모집하는 곳이 있다면 신중하게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