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파 웨이/ 애니 제이콥슨/ 이재학 옮김·김종대 감수/ 지식노마드/ 2만8000원
1957년 미국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닐 맥엘로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P&G에서 집집마다 다니며 비누를 파는 세일즈맨으로 시작해 경영진까지 올랐다. 주부들이 TV를 보는 낮 시간에 비누 광고를 하자고 제안해 소프 오페라(TV 연속극)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장관이 된 지 5주 만에 맥엘로이는 의회에 국방부 내 새로운 기구 창설안을 제시한다. 이름은 고등연구계획국(아르파·ARPA). 오늘날 국방고등연구계획국(다르파·DARPA)의 전신이다. 맥엘로이 장관은 모든 군사 프로젝트를 관장할 기구를 구상하면서 ‘미국은 필요가 생기기 전에 국가의 필요를 미리 그릴 줄 아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르파(다르파)는 지난 수십년간 군사 기술뿐 아니라 인터넷, 드론, 위성항법기술(GPS) 등 현재 널리 쓰이는 기술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50년대 우주와 탄도미사일 방어에 중점을 두던 아르파는 1960년대 베트남전의 혼돈에 휘말린다. 아르파는 베트남전 승리에 필요한 맞춤형 무기와 기술을 연구·공급했다. 고엽제도 아르파에서 개발됐다. 아르파는 미 육군 화학부대 생물학연구소의 제임스 W 브라운 박사에게 비밀리에 제초제를 연구하도록 했다.
베트남전 기간 아르파는 훗날 논란이 되는 많은 연구에 관여했지만, 동시에 여러 기술을 태동시켰다. 드론이 이 중 하나다. 당시 아르파는 소리가 전혀 안 들리게 설계된 동력 글라이더를 도입했다. 이 글라이더는 적은 연료로 정글의 나무 위에 붙다시피 해서 장시간 날 수 있었다. 이 비행체는 향후 드론을 포함해 비재래식 군용기의 길을 닦게 된다. 저자는 “베트남전 기간에 다르파는 드론 개발을 시작했다. 2001년 10월 무장한 제1호 드론이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투입될 때까지 30년 이상 걸렸다”며 “대중이 드론 전쟁을 알았을 무렵, 미국의 드론 기술은 이미 수세대를 앞서 있었다”고 설명한다.
1970년대 반전운동이 거세지면서 베트남전에 관여한 과학자들은 크게 비난받는다. 종전과 함께 아르파의 정체성도 바뀌었다. 이름 역시 ‘국방’이 덧붙여져 ‘다르파’가 됐다. 당시 스티븐 루카식 국장은 다르파의 임무를 지휘·통제·통신(C3)에 두었다. 이 기조 아래 ‘어썰트 브레이커’라는 새로운 무기 프로그램이 출범했다. 스텔스, 첨단 탐지기, 레이저 유도 폭탄, 드론 등 고도의 기밀로 분류된 프로그램들이 비밀리에 진행됐다.
다르파의 중요 업적 중 하나는 인터넷 개념의 발명이다. 시작은 1962년 민간인 과학자 리클라이더가 아르파 연구실장으로 합류하면서부터다. 그는 여러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방대한 시스템인 컴퓨터 네트워크의 개발을 국방부에 제안했다. 이를 ‘은하계 컴퓨터 네트워크’라고 불렀다.
종전 후 다르파는 미국 4개 대학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알파넷(APRANET)을 구축했다. 이때 윗선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쓰이는 ‘네트워크 중복’ 개념이 제시됐다. 1972년에는 24곳이 네트워크로 연결됐고, 전기공학자 로버트 칸과 프로그램 관리자 빈트 서프는 컴퓨터들이 같은 언어로 소통하도록 전송제어규약(TCP)과 인터넷규약(IP) 개념을 발명했다. 다르파는 1975년 알파넷 시스템을 국방 통신국으로 넘겼고, 1982년 이메일을 주고받는 표준이 만들어졌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기술의 발전 속도와 인간의 통제 능력 사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시민이 군수산업을 견제하려면 “지식이 풍부하고 날선 시민”이 필요하다고 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말을 제시한다. 그는 “다르파의 전직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곳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기술들이 공공 영역과 비교해 10년에서 20년은 앞서 있음을, 미래의 세계가 펼쳐지는 이유도 다르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런데 다르파가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현명할까”라고 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