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 2만6000원
“많은 쓰레기는 이득을 의미한다. 수많은 재화를 대량 생산하고,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이득을 얻는 과정 뒤에는 쓰레기가 남는다. 쓰레기는 우리의 일상을 간편하게 만들고, 시간과 노동을 덜어준다. 현대의 운송 체계는 우리와 관련 없는 일이 아닌,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주요한 요소다. 물건을 택배로 받고,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은 곧 끊임없이, 편안하고, 빠른 소비를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는 거대 국제 쓰레기 공장의 공범이 된다.”(370쪽)
우리는 쓰레기와 함께 산다. “남은 일생에서 올여름은 가장 선선한 여름”, “뜨거운 바닷물에 전 세계 산호 3분의 1이 하얗게 질렸다”, “겨울은 1개월 줄고, 여름은 1개월 늘어” …. 환경 재난을 경고하는 신문 기사가 넘쳐난다.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가열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붕괴’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인류세’에 이어 ‘쓰레기세’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훗날 인류가 지금의 지층을 파보면 온통 플라스틱 조각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쓰레기는 유일하게 증가하는 자원이다.” 플라스틱은 생산, 소비, 수거, 처리되는 ‘생애주기’ 내내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우리가 매일 내놓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펠탑 100여개 무게에 달한다. 쓰레기의 양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래 계속 늘어나고만 있다. 2050년에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만 지금보다 75% 증가한 34억톤에 달할 것이다. 우리는 편리한 소비만큼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 찾기에는 게으르다. 우리가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는 외곽으로, 식민지로, 저개발국가로 떠넘겨지고, 태평양 위 거대한 쓰레기 섬을 형성한다.
편리함은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1969년 노르웨이 실험고고학자 토르 헤위에르달은 직접 만든 카약을 타고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그의 눈에 띈 것은 15년 전만 해도 없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본격화한 것은 슈퍼마켓이라는 소비 형태가 전 세계로 확산된 1960년대 이후다. ‘판매의 최적화’ 과정에서 물건이 과잉 공급되고 포장재와 운송 자재가 더 많이 쓰였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모두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70년대, 다이옥신의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쓰레기가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명적인 위협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소각이라는 처리 방식도 능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쓰레기는 점차 복잡해지고 처리 문제도 그만큼 난해하게 꼬여간다. 20여 년 전부터는 전자 폐기물(E-Waste)이 환경오염의 새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복잡한 화합물로 만들어진 이러한 쓰레기는 대개 특수 폐기물로 투기되거나 가나의 악명 높은 아그보그블로시 매립지에 묻힌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하기도 전에 ‘하이테크 오염’이 추가된 셈이다.
생활방식을 바꾸어 줄일 수 있는 쓰레기의 양은 20% 정도다. 저자는 이 20%를 줄이기 위해 일상에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더 많은 제한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러한 생산과 소비를 강요하는 경제체제를 진단해야 한다. 상품은 언제나 넘치도록 생산되어 진열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1ℓ의 음료수를 마신 뒤 남은 플라스틱병을 ‘분리 배출’하고 만족하며 쓰레기통에서 돌아선다. 방금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좋은 논픽션은 늘 스릴러보다 흥미롭다. 이 책이 그렇다. 독자의 눈앞에 위기의 시대를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최전선의 쓰레기 연구서다. 죽은 쓰레기가 살아 있는 존재들을 압도하는 시대가 왔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는 시점까지는 이제 5년 남았다. 기후 시계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버리고 잊은 쓰레기들을 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버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라.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독일 일간지 차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