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800만원 대출” 피싱범죄에…법원 “피해자 책임 없어” [별별화제]

본인이 아닌 제삼자에 의한 비대면 대출 시 카드회사가 본인 확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 대출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27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카드회사가 대출명의자인 A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연합뉴스

A씨는 2022년 7월 아들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휴대전화가 고장 나서 보험금을 청구해야 한다”는 거짓말에 속았다. 이후 보이스피싱 조직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링크된 원격 조작프로그램을 휴대전화에 설치했고, 비밀번호 등 개인 정보를 알려줬다.

 

이후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의 명의로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카드회사는 비대면 절차를 거쳐 조직이 요청한 예금계좌에 800만원을 입금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그 돈을 들고 잠적했다. 

 

그러자 카드회사는 A씨에게 대여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A씨는 본인 의지에 의한 대출이 아니기 때문에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씨를 대리해 대여금 청구소송에 대응했다. 공단 측은 A씨는 대출 당시 만 65세를 넘긴 고령자이고, 고령자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속도로 대출 절차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본인 확인을 위해 발급된 인증서가 대출계약 당일 발급된 점 등을 고려해 보면 A씨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대출계약이 A씨 의사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항변했다. 여기에 비대면 실명 확인방안 의무사항 중 카드회사가 일부만을 실행해 본인확인 조치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공단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김정우 변호사는 “비대면 대출이 활성화된 요즘 형식적인 확인만으로는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다 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피싱 범죄 수법이 날마다 진화하는 만큼 피싱 범죄 예방을 위한 방법도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