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MBK 장악시 핵심기술인력 퇴사”… NH증권·MBK간 MAC조항 발동 가능성 급부상

80개 협력사들 “귀금속, 반도체 황산 품질 문제 발생 우려”
영풍 강성두 사장 “경영권 얻어도 고려아연 중국에 안 판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MBK파트너스·영풍과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국내 최대 규모 적대적 M&A로 비화하고 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손잡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13.6% 상향 조정했다. 1990년 고려아연이 상장된 후 공개 매수 개시 전까지 역대 최고가는 67만2000원이었는데 이보다도 11%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로 인해 공개매수를 위한 최대 필요 자금은 기존 2조원에서 2조2721억원으로 증가했으며, 이 자금의 약 70%인 1조5000억원은 NH투자증권의 차입금으로 조달될 예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 인력들이 전원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공개매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MBK가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자신의 기술과 경험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즉각적인 퇴사를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은 MBK-영풍 연합에 자금을 대기로 한 NH투자증권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또한, 고려아연의 노동조합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파업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려아연 노조는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MBK의 적대적 공개매수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약탈적 공개매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80여 개의 고객사들은 MBK-영풍의 적대적 M&A가 진행될 경우,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주요 제품인 아연, 연(납), 귀금속, 반도체 황산의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고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심각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부정적 요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와 NH투자증권 간의 계약을 유지하는 데 중대한 사정 변경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MAC(Material Adverse Change) 조항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MAC 조항은 중대한 부정적 변경이나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의미하며, 인수합병 계약에서 예기치 않은 중대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거래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에서도 MAC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지분 인수 계약 시 MAC 조항을 포함시켰으며, 이를 근거로 계약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고려아연의 핵심 기술 인력과 노동조합의 반대, 협력사들의 반발 등은 모두 MAC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NH투자증권이 MBK-영풍 연합에 제공하기로 한 차입금을 원래 계약대로 실행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NH투자증권과 MBK 간 거래에는 MAC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중대한 부정적 변화가 발생할 경우 거래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고려아연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제중 부회장과 다른 핵심 인력들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MBK가 회사 운영을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들은 “영풍 및 MBK에 회사가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모두 퇴사할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러한 내부 저항은 MBK-영풍 연합의 경영권 인수에 중대한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려아연이 해외 사업을 벌이는 호주에서 외국인 투자 및 인수합병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국인 투자 심의위원회(FIRB)의 심의도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다. FIRB는 자국 내 주요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 자본에 대해서는 더욱 까다로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FIRB는 중국계 기업의 주요 광물 자원 투자에 대해 불승인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어, MBK-영풍의 인수 시도 역시 이러한 규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제반 상황은 NH투자증권에게 있어 계약 이행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MBK 측은 “MAC는 모든 인수금융 조항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사항”이라며, 이번 인수 시도 과정에서 적용될 만한 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NH투자증권 측은 “고객을 대리하고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입장에서 비밀 유지 등의 이유로 자세한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러한 가운데 영풍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권을 획득한 이후에도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영풍 강성두 사장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에 성공할 경우 중국 등 해외에 고려아연을 매각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 “저와 MBK 김광일 부회장이 회사에 존재하는 한 고려아연을 중국에 안 판다.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고려아연 직원들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