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속 배추가 사라졌다…“10배나 오른 게 말이 돼요?”

배추 소매가 1만원 육박…일부 마트선 한 포기 2만원대
자영업자 “이런 가격 처음 봐” 울상…김치 제공 중단도
마감 시간대 방문한 서울의 한 마라탕 가게에서 주문한 마라탕 속에 소량의 배추만 들어있는 모습. 오른쪽은 서울의 한 할인마트에서 1통에 1만900원에 판매 중인 다듬배추.

 

“알배추 12개 든 한 박스가 10만원까지 올랐어요. 심지어 거래처라고 시중보다 15%가량 싸게 들어온 게 이 가격이에요. 평소에는 비싸도 1만원 언저리였는데, 10배 가까이 오른 거죠. 이게 말이 됩니까?”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에서 마라탕 가게를 운영하는 선종수씨는 가게 한편에 놓인 조그만 상자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선씨는 “7월부터 채솟값이 치솟더니 추석 전후로 말도 못 하게 올라 이익이 40% 넘게 떨어졌다”며 “솔직히 손님들이 그릇에 채소를 더 담을 때마다 적자이지만 나중을 보고 일단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폭염과 가뭄 등의 영향으로 배춧값이 폭등하자 자영업자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배추를 주재료로 사용하거나 김치 등 밑반찬으로 내놓는 식당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값을 치르고 수급 중이다.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배추 가격은 2만원을 훌쩍 웃돌고 있고, 정부 통계에서도 소매가격이 포기당 1만원에 근접했다.

서울의 한 마라탕 가게에서 이달 초 알배기 두 박스를 8만원에 구매한 내역서. 이달 말에는 한 박스 10만원에 구매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기준 배추 소매가격이 포기당 평균 9963원까지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0.9% 비싸고 평년보다 38.1% 높은 수치다. 배춧값 폭등은 폭염이 이어지고 일부 재배지에서 가뭄까지 겹치면서 작황이 부진해 공급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김치업계 일각에서는 aT 조사 기준 배춧값이 조만간 1만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치 반찬을 한시적으로 제공하지 않거나 양배추 김치나 단무지 무침 등으로 대체하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배추뿐만 아니라 오이나 상추 등 웬만한 원재료 가격이 다 올라 너무 힘들다”며 “당분간 기본으로 제공하는 겉절이 양을 줄이고 무료 리필은 중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마라탕 가게 점주인 장모씨도 “최근 몇 년간 이렇게 채솟값이 오른 건 처음 본다”며 “랜덤으로 제공되는 배달 마라탕이나 샹궈의 경우 청경채나 배추 등 채소 토핑은 최소화하고 대신 다른 재료를 더 넣어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체소 매대에 배추 구매 제한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오전에 이미 전량 품절됐다.

 

김장철까지 겹치며 비싼 배추 대신 포장김치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자 대형마트에서는 일부 배추와 김치 상품이 동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1인 하루 3통으로 한정 판매를 하는 마트도 등장했다. 이날 찾은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이미 오전에 통배추 상품이 품절됐다. 포장김치 코너도 텅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채소 코너에서 일하는 한 종업원은 “할인 들어가는 날은 거의 오픈런을 해야 구매할 수 있다”며 “수급이 잘 안되다 보니 입고 기간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이날부터 중국산 배추를 공급하는 등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미봉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씨는 “김장철을 앞두고 매년 비슷하게 배춧값 상승이 반복되는데 너무 늦은 대책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당장 급하다고 중국산 배추를 쓰면 손님들 다 떨어져 나가서 어차피 못 쓴다”고 하소연했다.

 

일단 정부는 배추 가격·수급 안정을 위해 출하장려금 지원을 통해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대형마트 등에서 최대 40%까지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할인 지원책 등을 지속할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고랭지 배추는 보통 10월 중순까지 물량이 나오는데 그 이후로 가을배추가 많은 물량으로 나오면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