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사태 뒷짐진 정부, ‘역대급 레버리지’ 날리고 있다” [정지혜의 린치핀]

“일본 정부는 집요하게 전방위로 다가오는데 한국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네이버도 우물쭈물 실기하면서 상황에 끌려갔어요. 처음부터 이건 ‘라인야후’의 경영 책임이니 네이버는 관련 없다고 밝혔어야 해요.

 

대통령실에서부터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외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밑에서도 더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죠. 물론 관계 부처가 사태 분석 및 대응에서 기본적인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도 뼈아픕니다.

 

‘라인 사태’는 총체적으로 이 나라의 거버넌스(정부·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관리 방식)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인공지능(AI) 주권이나 데이터 보호 차원에서 개념도 못 잡고 있는 현실을 들켜버리기도 했고요.”

김양희 대구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무능, 무책임, 무기력.’

 

올 상반기 라인야후 사태(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에 네이버 지분 매각을 압박해 논란이 된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이 세 단어로 요약된다. 21세기형 데이터 보호주의 전쟁, 경제안보의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국가의 역할을 일깨운 이번 사태에서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라인야후 사태를 비롯한 일본의 데이터 보호주의 움직임을 꾸준히 추적해 온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부)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를 이대로 ‘흘러간 일’ 취급하며 외면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네이버라는 기업 하나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 일이라서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정부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인상을 남긴 것은 산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플랫폼 전쟁에 무방비 상태인 한국의 취약함을 알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는 고찰이다.

 

이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강하게 걸고 있는 ‘AI 드라이브’ 관점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김 교수는 “AI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 플랫폼의 접근성 기반이 무너질 판인데 AI 위원회를 만든다는 등의 계획에 몰두하는 건 인지 부조화”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의 '라인야후 사태' 일러스트. 한국언론진흥재단 '해외미디어동향' 갈무리

◆역대급 레버리지 만들고도 ‘전략적 사고’ 안 하는 정부

 

네이버가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도 이건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접근했어야죠. 일본에서는 애초부터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움직였는데요. 이미 애들 싸움에서 부모가 와서 지키고 있는데 내 자식한테는 알아서 꿋꿋하게 싸우라고, 맞더라도 나는 가만히 있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라인사태에서 정부는 시종일관 “네이버의 입장이 중요하다”며 소극적인 태도였다. 라인야후가 총무성에 제출한 2차 보고서도 ‘지분 매각’이라는 말만 없을뿐 사실상 네이버의 손발을 다 잘라내는 ‘탈 네이버’ 정책이었지만 아무 대응이 없었다.

 

이를 두고 “지분 매각 요구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듯한 정부의 반응은 매우 안이하다는 인상을 준다. 총무성의 진짜 의도가 ‘네이버 영향력 약화’라는 것을 몰랐어도 문제고, 알고도 모른 척 했다면 그 역시 문제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진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쪽은 일본측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성동격서 아닌가 싶을 정도”라며 “일본이 처음엔 지분 매각을 외치다가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네이버 흔적을 거의 없애는 소기의 목표에는 도달한 것 같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겨우 살려놓은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말고는 윤석열정부의 이러한 기조를 납득하기 쉽지 않다. “현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는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한·일 관계 개선’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 정부도 최대 치적으로 꼽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 사태에 전면 등장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고, 한국은 이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는 점이 비교된다.

 

김 교수는 “무엇을 위한 한·일 관계 개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한·일 관계 개선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할 때 지금과 같은 정부의 무책임함에서 비롯되는 피해가 훨씬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네이버-라인 사례가 한·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본이 중요 기관 인프라를 한국에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경제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레버리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네이버가 사업적인 관점으로 털고 나오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도 그런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근시안”이라며 “일본이 네이버, 라인을 의존하게 만들고 쉽게 끊지 못하게 하는 전략적 사고를 정부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저자세 대일외교가 자초한 논란, 계속해서 이슈화 저지에만 주력한 인상을 준 것은 결국 일본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우리 기업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고 보인 것은 일본 입장에서 ‘좀 더 세게 밀어도 되겠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소극적 대응 기조는 국내 유관기관의 부적절한 대응을 불러 사태의 조기 진화와 미래지향적 해법 모색 차단, 한일관계 악화를 오히려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김양희 교수가 ‘라인사태’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대통령실 의지도, 부처의 업무 파악도 실종

 

김 교수는 정부와 기업 어디서도 이번 사태의 실태와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라인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할 때(2016년)부터 일본 정부는 상당히 경계했고, 2021년 라인 중국 자회사의 부정 접속 사건과 2023년 라인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재차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 우익 정치권이 이런 불안감을 경제안보상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정치화하며 키우는 동안 우리 정부는 그 심각성을 모른 채 사태를 방치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문제가 된 두 번의 보안 사고 모두 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과 그에 따른 대응이 필요했다. 김 교수는 “2021년 라인의 중국 자회사에서 부정 접속이 있었던 건 맞지만, 정보가 유출된 바는 없었고 그 회사가 고급 정보를 다루는 것도 아니었다”며 “그런데 일본에서는 엄청난 정보를 중국에 가져가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하는 것처럼 얘기하며 한국이 중국에 정보를 넘기면 어떡하냐는 식의 와전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일본에서는 이미 한 번의 커다란 반향이 있었던 상황에서 2023년 발생한 정보 유출 사건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준 격이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라인야후가 잘못했다는 점에선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아직까지 회원 정보나 메시지, 은행 계좌, 신용카드 등에 대한 정보 유출이나 2차 피해는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실태 파악이 되고 있지도 않은 사이 일본 내에서 이 사안이 ‘경제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심각한 선전선동으로 이어진 측면이 다분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이 이 국면에서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정보의 비대칭적 문제가 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경제안보 관련 일본 내 전문가들과 접촉했을 때 또한 ‘정치권의 일부 우익에 의해 불안감이 과하게 조성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가 포착됐다. 일본에서조차 나타나는 이런 평가를 한국 정부가 간과한 것은 짚어볼 지점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없으면 부처에서 일을 만들어봤자 혼날 일밖에 없으니 안 하죠. 그렇다 해도 개인정보위가 일본측의 ‘네이버 클라우드 공동 조사 의향’ 질문을 무시하고, 해당 사안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기자회견장에서 답하는 등 기본적인 직무유기를 한 것은 그 자체로 너무 충격적입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지난 27일 도쿄에서 투표 결과 제28대 총재로 선출된 후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다음 달 1일 임시국회 지명 투표에서 일본의 102대 총리로 선출된 뒤, 새 내각을 발족할 예정이다. 도쿄=AP뉴시스

◆새로운 보호주의 득세…‘협력과 응전’ 모두 필요

 

라인사태를 두고 국내 일각에선 네이버가 키운 라인을 일본에 뺏긴다는 논점이 주로 부각되었다. 김 교수는 ‘네이버 일병 구하기’ 식의 단편적 인식에 과도한 초점이 맞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라인사태의 진실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을뿐더러, 네이버라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글로벌 경영 취약성,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엄격성 등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도 있다는 분석이다.

 

AI 주권 시대에 데이터를 다루는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의 경영진이 일본 정부의 지분 매각 요구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보안 거버넌스에 대한 우려였을뿐”이라고 일본을 대변하듯 나온 것은 특히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네이버가 AI 시대에 갖는 중요한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한국이 일궈낸 유일한 AI 대기업이 이렇게 속수무책 당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케 한 대목이다.

 

김 교수는 “AI·데이터 주권이라는 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의 상징은 새로운 보호주의의 양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라며 “자국민 정보나 산업 기밀이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이터 보호’, 해외 기업을 쫓아내서라도 자국 기업 키우기를 우선하는 ‘데이터 보호주의’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라인사태 이후에도 데이터 보호주의로 인한 경제적 긴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어서다. 한편으로 양국은 데이터 보호 차원에서 협력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라인사태에서 한국은 “데이터 보호를 위한 협력도, 일본의 데이터 보호주의에 대한 단호한 반대와 응전도 안보였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현 상황에서 시급한 조치로 김 교수는 “한·일 간 관련 대화 채널을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이 경제안보 및 데이터 보호 협력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네이버가 이렇게 전방위로 라인과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맞는지 등을 깊게 논의하는 장으로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기존 채널도 거의 가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했다.

 

한편 이날 일본에서는 자민당 신임 총재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선출됐다. 김 교수는 이시바에 대해 “기시다 현 총리에 비해 한일관계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며 “라인사태 관련 일본 정부의 무리한 데이터 보호주의에 제동을 걸고, 양국 간 데이터 보호 협력에 나서는 데 잘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