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도 최고의 고양이 집사였다. 숙종의 고양이 사랑은 유별났고, 고양이도 숙종이 죽은 후 음식도 먹지 않고 빈전을 지키다가 죽었다. 숙종이 직접 지은 글을 수록한 ‘숙종대왕 열성어제’에는 ‘매사묘(埋死猫)’라는 글이 있다. “내가 기르던 고양이가 죽어서 사람을 시켜 묻도록 하였으니, 귀한 짐승이라서가 아니라 주인을 따랐음을 아끼기 때문이다.”라는 글로,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며 심정을 밝힌 숙종의 조사(弔辭)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숙종은 궁궐 후원에서 굶어 죽게 된 고양이를 발견했고, 살려낸 후 이름을 ‘금덕(金德)’이라 하였다. 금덕이가 죽자, 숙종은 ‘매사묘’를 지어 고양이를 애도한 것이다. 어미 고양이 금덕에게는 새끼가 있었는데 궁인들이 ‘금손(金孫)’이라고 불렀다. 홀로 남은 금손은 금덕이처럼 숙종을 따랐고, 이 금손이 숙종의 사후에 그 무덤 곁에 묻힌 고양이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1680~1763)은 ‘성호사설’의 ‘만물문(萬物門)’ 항목에 ‘금묘(金猫)’라 하여 숙종이 사랑한 금빛 고양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우리 숙종대왕은 일찍이 금묘 한 마리를 길렀었는데,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그 고양이 역시 밥을 먹지 않고 죽으므로, 명릉(明陵) 곁에 묻어주었다. 대저 ‘개와 말도 주인을 생각한다.’는 말은 옛적부터 있지만, 고양이란 성질이 매우 사나운 것이므로, 비록 여러 해를 길들여 친하게 만들었다 해도, 하루아침만 제 비위에 틀리면 갑자기 주인도 아는 체하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묘는 도화견(桃花犬:중국 송나라 태종의 무덤 곁에 묻힌 개)에 비하면 더욱 이상하다.”고 하여 금묘를 숙종의 명릉 곁에 묻어준 사실과 함께 개나 말에 비하면 주인에 대한 의리를 별로 지키지 않은 동물인 고양이가 숙종에 대해 마지막 의리를 지킨 사실에 놀라워하였다.
숙종과 금묘와의 인연은 이 시기의 학자 김시민(金時敏)의 문집인 ‘동포집(同圃集)’에 수록된 ‘금묘가(金猫歌)’에도 보인다. 숙종이 승하한 뒤 금묘가 왕의 빈소 주위를 돌며 울면서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는데, 마치 충신과 지사(志士)가 절개를 다해 순국한 것과 같이 기이하고도 성대한 일이기에 이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하였다. 숙종의 두 번째 계비였던 인원왕후(仁元王后)는 금묘를 수레에 실어 명릉 근처에 묻어주게 했다. 이로써 왕의 은혜를 목숨으로 갚은 고양이는 영원히 숙종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현재 숙종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안에 있는 명릉(明陵)이다. 이곳에는 숙종 자신을 비롯하여 정비 인경왕후, 첫 번째 계비 인현왕후,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무덤이 함께 있다. 인현왕후는 숙종과 나란히 묻혀 있고,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숙종 곁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인원왕후는 명릉 좌측의 언덕 높은 곳에 무덤이 있다. 한때는 숙종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다가 1701년 사약을 받고 죽은 장희빈은 1969년 사후 268년에 이곳에 왔다. 처음 경기도 광주 오포에 무덤이 있었는데, 도시 개발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숙종 곁으로 온 것이었다. 4명의 왕비와 더불어 애지중지했던 고양이까지 그의 무덤 곁에 묻혔으니, 사후 기준으로 보면 숙종은 가장 행복한 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