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강선은 새로운 북한의 핵시설인가 아닌가, 영변을 대체하는가 아닌가, 김정은이 간 곳은 강선인가, 영변인가.
지난달 13일 북한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우라늄 농축시설 방문 사실과 사진을 공개한 뒤로 북한 핵시설의 실체와 공개 의도 등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의 핵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이자, 북한의 의도와 전망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공개된 것이어서다.
◆강선은 어떤 곳?
평양 남동쪽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선은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대북매체 등에서 북한이 “은폐하고 있는”, “핵시설로 의심되는” 곳으로 조금씩 거론됐다. 북한의 핵시설로 세상에 공식화된 곳은 1990년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실제 사찰을 했고, 미국 핵 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학 명예교수가 2000년대 실제 방문했던 영변 핵 단지뿐이었다. 그렇기에 약 30년 북핵시설의 ‘전부’로 알았던 영변 외에 또 다른 핵물질 생산 시설이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강선 핵시설 존재에 대해 단편적 추정만 나오던 상황에서 2018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시작됐다. 강선이 협상 대상에 포함되는 것인지, 실체가 밝혀지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2019년 북·미 비핵화협상 결렬 후 협상 실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강선 등 나머지 시설을 북한이 밝히지 않았다’는 미국과 ‘영변이 핵심이고 전부나 마찬가지’라는 북한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실체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강선은 어느새 북한의 공공연한 핵시설로 기정사실화됐다.
2019년 협상 결렬 후 한때 잠잠했지만 최근 IAEA는 물론, 민간 연구소 등에서 강선 지역을 모니터링하다 포착한 동향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해석이 분분했다. 지난 4월, 미국 북한 전문매체 NK프로가 위성사진 분석 결과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 의심 건물이 증축됐다며 “원심분리기의 바닥 면적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하자 미국의 또 다른 북한 분석 매체인 38노스는 “강선 핵시설의 구체적 기능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고 논란도 있다”며 반박성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강선을 모니터링해온 IAEA가 지난 6월 “강선의 핵시설 의심 단지는 영변 핵 단지와 속성이 유사하다”고 밝힌 것은 강선은 새 핵시설이 거의 맞다고 확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정기이사회에서 “지난 2월 말 강선 단지의 별관 공사가 시작돼 가용 면적이 크게 확장됐고, 강선 단지는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과 기반시설 특성을 공유한다”고 했다. 강선 단지는 영변 핵 단지처럼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농축해 핵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김정은, 우라늄 농축시설 방문 최초 공개
그로부터 석 달 후인 지난달 13일, 북한 매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기계인 원심분리기가 빽빽하게 설치된 장소 한가운데 있는 사진을 5장 공개했다. 북한 지도자가 핵물질 생산 시설을 직접 방문한 모습이 공개된 건 최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9년5월 희천정밀기계공장 현지지도를 할 때 원심분리기 주요 부품인 로터(rotor)를 가져다 놓고 찍은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을 뿐이다.
헤커 박사는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 ‘핵의 변곡점’에서 2004년 1월 영변 방문 때 김정일이 영변 핵센터를 방문한 적 있었는지 묻자 핵 센터 소장인 북측 리홍섭 박사가 “아니요. 그분의 안전을 걱정해서 오시지 못하게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다. 북한의 핵 관리 능력의 불완전성이 엿보이는 단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김 위원장이 최소 수백개인 원심분리기가 가득 찬 장소를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 읽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 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하고 핵폭탄생산 및 핵물질 생산 실태를 파악했으며,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릴 목표와 관련한 과업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향후 △원심분리기 대수를 더 늘릴 것 △원심분리기의 분리능력(핵물질 생산능력)을 높일 것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을 계획대로 이행하라는 3가지 지시사항도 공개했다.
북한은 이곳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간 IAEA는 영변 핵 단지에서도 간헐적으로 냉각수가 배출되는 정황이 포착돼 영변 핵 단지가 가동 중인 것으로 추정하는 동시에, 강선 시설도 외관상 ‘영변화’되고 있다고 한 만큼, 두 곳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영변·강선 동시 운영인 듯”
2010년 영변에 함께 방문했던 헤커 박사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38노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공개한 제조시설 사진의 전반적 건물 배치는 2010년 당시와 유사해 보이지만, 원심분리기와 배관은 당시와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방문 경험에 근거해 우리는 북한이 영변 이외에 추가로 농축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며 “북한이 영변 외부에 추가적인 시설을 건설해 고농축 우라늄(핵물질) 생산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이 정확히 어느 시설을 방문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강선이라는 주장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공개한 시설 관련 “강선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확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보고했다.
원심분리기는 기본적으로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직경이 굵을수록, 길이가 길수록 분리효율, 즉 핵물질 생산능력이 높아진다. 소재를 바꾸고 개선, 가공하면서 성능을 개량해나갈 수도 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 속 원심분리기 외형만으로도 북한의 핵물질 생산 수준이나 개발 현황을 가늠할 단서가 된다.
북한은 이란과 함께 파키스탄의 원심분리기 ‘P(파키스탄)2’를 넘겨받아 각자 개량해온 것인데, 이란이 ‘IR(이란)2’, ‘IR3’, ‘IR4’…‘IR7’ 순으로 개량해나가고 있는 원심분리기를 기준 삼아 비교했을 때, 2010년 헤커 박사에게 북한이 원심분리기가 ‘IR4’ 정도 되는 원심분리기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높이 약 170㎝짜리 원심분리기는 ‘IR6’ 정도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란은 IR7, 8, 9를 거론하는 수준까지 기술적으로 나아가 있고, 현재 대량생산 중인 모델은 IR6이다. 북핵 전문가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이춘근 박사는 30일 “북한의 현 수준은 P2의 개량형 양산과 운용에 성공했지만, 이를 월등히 뛰어넘는 고성능 원심분리기는 개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 정도만 해도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북한의 핵무장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형태의 짤막한 원심분리기들이 보인 것에 대해서는 “과거 소련이 소형 원심분리기를 대량 배치해 가동하면서 경제적 운용을 했던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강선, 영변 등이 서로 대체하는 관계라기보다 원심분리기 개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술 수준이 발달해나갈수록 각 단계별로 요구되기 시작하는 목적을 수행하며 공존하는 시설일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개량해 한창 대량 양산하는 공장, 서서히 도태돼 가는 설비가 있는 공장, 전혀 새로운 것을 시험하며 구형 공장을 서서히 대체해 신형으로 교체하는 공장으로 총 세 가지가 같이 간다”며 “(영변에서 헤커 박사에게) P2를 보여준 지 15년이 됐으니 개량형이 나왔을 것이고 이번에 보여준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방문한 곳은 영변보다는 강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번 공개 시설이 영변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북핵시설의 메인은 여전히 영변이고 강선은 기술적 사고 등을 대비한 일종의 ‘스페어’”라며 “2019년 회담에서 북한은 주인공인 영변을 내놨는데 영변에 딸린 다른 부대 시설 정도되는 것을 핑계로 미국이 협상을 깨버렸다고 여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의 핵시설 방문은 북한 자체 국방력 발전계획에 따른 행보로 보이지만, 굳이 대외 메시지를 염두에 둔 정치적 의도를 따져보더라도 ‘다 쓰러져가는 영변’이란 식으로 평가절하당했던 영변을 보란듯이 공개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