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9월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하면서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에서 제기한 ‘반도체 겨울’ 우려를 일정 부분 불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규 스마트폰 출시와 인공지능(AI) 서버 신규 투자 확대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견조한 수요가 이어진 데다 D램과 낸드 고정가도 오르면서 반도체 업계는 겨울은커녕 여전한 봄날을 만끽 중이다.
하지만 9월 반도체 수출액이 다시 강한 상승세를 타면서 ‘반도체 겨울’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가 모였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반도체 겨울론’이 제기됐지만, 9월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반도체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9월 반도체 수출 증가는 글로벌 AI 투자, 신규 아이폰 출시 등 견조한 정보통신(IT) 기기 수요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9월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87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0.7% 증가했다.
반도체 강세가 한국만의 성과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월간 수출입 통계를 발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수출입 통계가 반도체 등 첨단 제조 산업의 글로벌 무역 동향을 가늠할 선행 지표로 받아들여진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마이크론의 역대급 실적과 엔비디아(미국), TSMC(대만)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상 투자심리가 되살아나는 등 훈풍 분위기는 반도체 주력 강국 여럿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의 대미(對美)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11.2% 급증했다. 일반기계 수출은 주춤했지만 반도체 수출이 이를 만회했다.
한동안 내수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었던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도 전년 대비 17.8% 증가해 7개월 연속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아울러 대중국 디스플레이·무선통신 등의 수출도 증가했다.
또한 D램(DDR4 8Gb)과 낸드(128Gb) 고정가는 각각 작년 대비 31%, 14% 상승하면서 반도체 수출액 증가에 힘을 보탰다.
한국 정부의 수출 분류상 반도체가 아닌 컴퓨터로 분류되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의 수출 역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 기업용 수요 증가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SSD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데이터 저장용으로 만든 상품이다.
올해 9월 SSD 수출액은 12억4000만달러로 전년 9월보다 168.8% 급증했다. SSD가 포함된 컴퓨터의 지역별 수출 동향을 보면 미국(4억8000만달러), 유럽연합(1억2000만달러), 아세안(1억3000만달러) 등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한국의 2대 수출 품목 자동차도 조업일수 감소에도 4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9월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4.9% 증가한 54억8000만달러를 수출하며 역대 9월 최대치를 기록했다. 9월 자동차 수출의 증가 요인으로 주요 제조업체의 임금협상이 타결되고, 하이브리드차(58%) 등 친환경 차량 수출이 늘어난 것이 꼽히고 있다.
이밖에 무선통신기기·컴퓨터 등 IT 부문도 호조세다. 무선통신기기(19억2000만달러)는 19.0% 증가했다. 신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글로벌 모바일 기기 시장이 회복되고, 고성능·고부가 부품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컴퓨터 수출은 15억달러로 132.0% 증가했다.
선박 수출은 액화천연가스(LNG) 등 고부가 선박 수요 증가에 힘입어 76.2% 증가한 24억달러로 집계됐다. 바이오헬스(9.9%) 수출은 12억달러로 위탁생산(CMO)·바이오시밀러 수주가 늘어난 영향으로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반면 디스플레이(-4.3%), 자동차부품(-6.6%), 일반기계(-13.3%), 석유제품(-17.8%), 석유화학(-0.6%), 가전(-13.9%), 섬유(-2.8%), 철강(-3.9%), 이차전지(-11.8%) 등은 전년 9월보다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탄탄한 수출 증가세가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올해 한국의 수출이 처음으로 일본의 수출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데이터업체 CEI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일 간 수출액 격차는 35억달러로 역대 가장 적은 수준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