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황금들판이 빚은 보약 ‘햅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하면 다양한 먹거리가 떠오르는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햅쌀밥’이 있다. 황금들판을 이루는 농촌의 풍경이 주는 풍성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햅쌀로 지은 밥맛이 가장 좋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쌀밥을 먹는 나라는 많이 있지만, 밥맛으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단연 으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밥을 맛있게 짓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었다. ‘조선 사람들은 밥 짓기를 잘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 중국 청나라 때 학자 장영이 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즉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열두 가지 조건이란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쌀을 물에 불려 밥을 짓는 우리 솜씨가 탁월했던 것이다.

특히 햅쌀밥이 맛이 좋은 이유는 처음 수확한 곡식이라는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쌀은 도정 후 7일이 지나면 산화가 시작되며, 15일이 지나면 맛과 영양이 줄어든다. 또한 쌀의 수분이 16%일 때 밥을 지으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갓 수확해서 도정했을 때의 수분이 그 정도라고 한다.

김구태 농협경주교육원 교수

역사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훨씬 더 많은 쌀을 소비했었다. 조선 후기 기록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한 끼에 쌀을 섭취하는 양은 약 420㎖이고, 당시의 밥그릇 높이는 9㎝, 지름은 13㎝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오늘날 밥그릇의 용량은 일반적으로 290㎖에 불과하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한 끼에 쌀을 조상보다 3분의 1 정도 먹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쌀 소비량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3년 1인당 쌀 소비량은 56.4㎏, 하루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154g, 즉 쌀 한 공기 반 정도에 불과하다. 쌀을 덜 먹게 된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먼저 육류 소비가 늘어 쌀 소비량보다 많아졌다. 또 샐러드, 샌드위치 등 간편 식품을 선호하는 것도 쌀 소비가 줄어든 원인이다. 또한 탄수화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있다.

쌀은 흔히 탄수화물 공급원으로만 알려졌지만, 칼슘, 철, 마그네슘 등 필수 미네랄을 상당량 함유하고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이외에도 쌀은 단백질과 지방을 제공한다. 또한 세포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비타민B가 풍부하다. 비타민B가 부족하면 만성피로를 유발할 수 있는데, 특히 비타민B2(리보플라빈)가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식습관의 서구화로 쌀 섭취량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건강식으로 쌀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밀가루로 만든 빵 등에 비해 항암효과, 비만 등 성인병 예방에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쌀은 체내에서 콜레스테롤과 혈압상승 억제 효과가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고 한다. ‘밥은 곧 탄수화물이고 살이 찐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쌀에 포함된 당질은 에너지 소비에 우선적으로 사용되어 오히려 비만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2019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히 아침 쌀 소비량 감소율이 점심, 저녁 소비량 감소율의 두 배인 6.4%로 나타났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황금들판의 자연이 주는 선물 ‘햅쌀밥’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건강을 가꿔보길 권해본다.

 

김구태 농협경주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