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몽블랑을 걷고 싶다

TMB(Tour du Mont Blanc)를 다녀온 이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몽블랑이 자신을 불렀다, 혹은 선택했다”는 것이다. 몽블랑이 그들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 다녀온 이들이 일상을 초월하는 뜻깊은 체험을 하고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알프스는 빙하가 만든 산맥이다. 알프스의 90%가 빙하로 덮여 있고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 역시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빙하를 병풍 삼아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었고 그곳에서 삶의 역사를 써 왔다. 누군가에게 그곳이 삶의 터전이자 기원이라면 누군가에게 그곳은 동경의 대상이자 한 번쯤은 도전하고 싶은 대상, 미지의 영역이다. 수많은 작품이 이 거대한 산에 인간의 꿈과 근심, 동경과 두려움, 욕망을 투영해 왔고 그것은 산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숭고함에 관한 신화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런 몽블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켜켜이 쌓인 얇은 암석층으로 이루어진 알프스 산들을 접착시키는 시멘트 역할을 해 온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산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75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SACD상 수상작인 토마스 살바도르의 ‘산이 부른다’는 이러한 상황에 부닥친 몽블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다. 파리의 엔지니어인 피에르는 업무차 몽블랑에 왔다가 어떤 힘에 이끌려 복귀를 포기하고 그곳에 남는다. 근무지 이탈과 연락 두절로 회사로부터 해고당하고 가족들과의 불화를 감수하면서도 산에 머물기로 한 그의 선택은 그를 일상의 궤도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을 드러내거나 악조건을 뚫고 살아 생환하는 인간의 생존 의지를 보여주는 기존 산악영화의 문법과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영화는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다큐멘터리적 교훈과도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물론 카메라가 보여주는 몽블랑의 풍경은 가슴 벅차도록 시리고 아름답다. 산에 머무르기로 한 피에르의 선택이 가족들에게는 정신 나간 짓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피에르의 얼굴에서 과거와 다른 긍정과 평온의 기운을 감지한다. 피에르가 붕괴된 바위의 틈을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 그것은 문명과 단절된 신화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여타 산악영화들과 완전히 결별하는 지점인데, 이곳에서 그는 리얼리티로부터 벗어난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몸을 맡기고 유영한다. 그것은 빛나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다. 여기서 그는 반짝이는 존재들을 만난다. 이곳은 산의 부름에 응답한 자가 도착한 세계이다. 그곳에서 그는 상징적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다. 영화의 결말은 열려 있다. 그것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삶의 세계인지 죽음의 세계인지, 재난인지 자발적 선택인지 모호한 세계이다. 그가 현실로 생환하더라도 돌아온 그는 더 이상 과거의 피에르가 아닐 것이다. 이 매혹적인 판타지 장면은 디지털을 배제한 수공업적 VFX로 이루어졌고 감독 자신이 그 매혹의 순간을 직접 연기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나의 오랜 버킷 리스트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아! 나도 몽블랑을 걷고 싶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