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싸우며 발전해 온 인류… 진화는 진화를 부른다

소방의 역사/ 송병준/ 부키/ 3만5000원

 

# 1666년 9월2일,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화재는 6일까지 닷새 동안 이어지며 1만3200채 가옥과 87채 교회, 세인트폴 대성당 등을 불태웠다. 당시 런던 전체 건축물의 5분의 4 정도를 파괴시킬 만큼 재난과도 같은 대화재였다. ‘런던 대화재’는 화재보험과 사설 소방대 신설과 강화, 소방펌프 개선 등 런던뿐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영국과 주변 국가 대도시가 화재에 더 철저히 대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 소방호스는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 화가이자 암스테르담시청 토목 공무원이었던 얀 반 데르 헤이덴이 만들었다. 앞서 런던 대화재 소식을 접한 헤이덴은 피스톤 방식으로 물을 분사해 불을 끄던 이동식 소방펌프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분사할 때 많은 사람이 필요한 데다 물을 퍼 날라 수조에 채워야 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화재 진압을 위해선 펌프와 불이 최대한 가까워야 했기 때문에 펌프 주변 사람들이 화재로 인한 건물 낙하물이나 붕괴에 노출될 위험이 컸다. 헤이덴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1670년 들어 부드러운 가죽을 동그랗게 꿰매어 15m 길이 소방호스를 제작했고, 호스 양쪽에는 황동 연결구를 달아 펌프나 호스끼리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펌프가 물을 빨아들일 때 진공에 의해 호스가 흡착되는 것을 막도록 중간에 용수철 모양의 철심을 넣었다. 헤이덴이 350년 전 발명한 소방호스의 길이 15m는 오늘날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에서 표준 규격이고, 호스끼리 연결해 이용하는 원리도 현재까지 유효하다.

송병준/ 부키/ 3만5000원

현직 소방관이 쓴 이 책은 불과 싸우며 발전한 인류의 발자취를 다룬, 소방 관련 역사서이자 종합 교양서다. 소화약제(불을 끄는 물질)와 소화 기구, 소방차, 스프링클러, 경보·피난 설비, 소방관의 역사 등을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4만여 건의 화재가 일어나 수많은 인명 피해와 엄청난 재산 손실을 겪는다. 특히 인명 피해가 큰 대형 화재가 일어나면 예외 없이 ‘인재’라는 말이 나온다. 화재에 대비한 건축물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관리 감독 당국이 직무를 소홀히 했다거나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란 식의 사후 진단이 나오기 일쑤다.

저자는 “대형 사고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평소 소방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위험 감수성을 키워 안전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파트 비상계단에 놓인 자전거, 열려 있는 방화문, 잦은 고장에 아예 작동되지 않도록 한 경보 설비 등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는 사소한 행위들이 화재 시 끔찍한 피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각자 주변에 화재 발생 가능성은 없는지, 불이 나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화 시설 등이 잘 갖춰졌는지 한 번쯤 고민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