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 “반도체 공장 환경평가 면제”, 우린 규제 막혀 허송세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해주는 법안에 서명했다. 2022년 발효된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업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가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도 결단을 내린 이유는 분명하다. 오랜 기간 환경영향 평가로 공장 건설이 수개월 또는 수년간 지연되면 당초 목표로 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가 둔화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는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반도체는) 국가 안보 문제로서 긴급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은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자국 주의를 선언한 뒤 칩스법을 앞세워 69조원의 보조금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끌어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 TSMC 등 굴지의 반도체 회사들로부터 블랙홀처럼 투자금을 빨아들였다. 삼성전자는 64억달러(약 9조원)의 보조금을 받고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5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 등을 짓는다.  

 

반도체 전쟁은 국가 총력전이 된 지 오래다. 미국·중국·일본·인도·독일 등이 공격적으로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뿌리며 제조 설비를 자국 내에 건설하려고 애쓰고 있다.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래 정보기술(IT)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기술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패권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은 정부는 물론 지자체, 의회가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4∼5년 걸릴 TSMC 구마모토 1공장을 2022년 4월 착공해 20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완공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게 경쟁국들의 상황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한가하기 짝이 없다. 인텔 사태에서 보듯 패권 전쟁에서 밀리면 몰락의 길을 걷는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번째 공장은 2019년 2월 부지가 선정됐지만,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2022년에 공장 건설을 시작하려 했지만, 지역 민원, 토지 보상, 용수 공급 인허가 등에 가로막혀 다섯 차례 이상 착공이 연기됐다. 삼성전자 평택공장도 송전탑 갈등에만 5년을 허비했다. 뒤늦게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을 내놨지만 저리 대출과 세제 혜택이 고작이다. 반도체 산업 지원은 국가 전략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대기업 특혜 프레임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정부·국회의 과감한 지원과 빠른 집행만이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