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을 위한 변명] WC 최초의 4위팀 ‘업셋’ 희생양이지만, “이승엽, 나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KT와 두산의 2024 KBO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이 끝난 3일 서울 잠실구장. 1차전에서 0-4로 패하며 4위 팀의 이점이 사라진 두산은 2차전마저 0-1로 패하며 2015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도입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5위 팀에게 준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내준 ‘업셋’의 희생양이 됐다.

 

이에 격분한 일부 두산 팬들은 경기 후 도열해 인사하는 이승엽 감독과 선수단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이승엽,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일부 팬들은 잠실구장을 둘러싸고 이 감독의 퇴진의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경기 종료 후 1시간이 훌쩍 넘겨서도 선수단 전용 출입구 주변에서 “이승엽, 나가”를 외쳤다.

 

요즘 감독이 맘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고 외치는 게 유행인가 보다. 선임 과정에 큰 논란을 빚은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도 사령탑으로 처음 치른 오만전에서 시종일관 관중들로부터 “홍명보, 나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적어도 홍명보 감독은 그런 말을 들을 만 했다. 선임 일주일 전만 해도 축구협회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비판했던 당사자가 면접 과정도 없이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의 독단적인 선임 제의를 응했으니 정당성에 큰 결여가 있으니 팬들은 그에게 “나가”라는 말을 한 것이다.

 

냉정하게 살펴보자. 과연 와일드카드 결정전 1,2차전에서 이 감독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경기 운영을 잘 못한 장면이 있는지. 홍명보 감독급의 비난을 받을 만한지.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하나도 없다.

 

지난 2일의 1차전은 선발 곽빈의 조기 강판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패배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승엽 감독이 1차전 선발을 곽빈을 선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곽빈은 평균자책점은 4.24로 다소 높지만, 15승9패로 원태인(삼성)과 함께 리그 공동 다승왕에 오른 ‘토종 에이스’다. 게다가 올 시즌 KT를 상대로 6경기에 등판해 무려 5승 평균자책점 1.51을 기록한 ‘KT 킬러’였다. 곽빈의 1차전 선발 등판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오히려 곽빈을 두고 다른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가는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의 기대와는 달리 곽빈은 1회에만 피안타 5개, 볼넷 1개를 내주며 넉 점을 내줬다. 2회 선두타자 심우준에게 볼넷을 내주자 이승엽 감독은 곧바로 곽빈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선발투수의 조기 강판에 이승엽 감독은 곧바로 ‘플랜B’에 돌입해 투수진을 총출동시켰다. 두 번째 투수로 나선 조던 발라조빅이 4이닝 1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였고, 이교훈, 이영하, 김강률, 이병헌, 최원준, 홍건희가 나머지 4이닝을 피안타 없이 4사구 3개만을 내주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선발 투수의 초반 난조는 이승엽 감독이 아니라 천하의 어떤 감독도 통제할 수 없는 독립변수다. 감독이 손쓸 수 있는 것은 선발 투수 강판 이후의 대처다. 이승엽 감독은 곽빈 이후의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2차전도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선발로 좌완 최승용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 2일 “시즌 마지막 날을 마치고 2차전 선발로 최승용을 결정했다. KT든 SSG든 누가 올라오더라도 상관없이 최승용을 2차전에 내겠다고 결정을 했다. 그 정도로 최승용이 컨디션이 좋다”고 밝혔다. 이 감독의 말대로 최승용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4.2이닝을 던지며 피안타 3개만을 내주며 탈삼진 2개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세 번째 투수 이병헌이 6회 선두 타자 로하스에게 2루타를 맞고, 1사 3루에서 강백호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한 점을 내준 것 역시 비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좌완인 이병헌에게 좌타자 강백호를 상대하게 한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통한의 실점 후 이승엽 감독은 김강률에게 1이닝, 마무리 김택연에게 2.1이닝을 맡겨 KT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1점을 내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2차전에서의 투수 운영 역시 흠잡을 데는 없았다.

 

흠이라면 두산 타선이 1,2차전에서 도합 18이닝 동안 무득점에 그친 것이다. KT 1차전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6이닝 무실점), 2차전 웨스 벤자민(7이닝 무실점) 모두 9월 이후 정규리그에선 부진했지만, 이번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2차전 패배 후 이승엽 감독은 “우울하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두 경기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 게 컸다”고 자책했지만, 이틀 내내 터지지 않은 타선을 이승엽 감독이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해 부임 후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엔 성공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 시즌엔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올라 1차전에 패하며 가을야구를 마쳤고, 올 시즌엔 한 단계 오른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맞이했지만, 타선 침묵으로 인해 또 한 번 일찍 가을잔치를 끝내고 말았다. 

 

혹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지 않게 4위 이상의 성적을 냈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두산의 전력은 4위에 오른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았다. 특히 팀의 근간이 되는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이 5.07로 10개 구단 중 8위였다. 외국인 투수들은 부상과 부진을 거듭했다. 브랜든 와델(7승)과 라울 알칸타라(2승), 시라카와 케이쇼(2승), 조던 발라조빅(2승)까지 외국인 투수 4명이 합작한 선발승은 불과 13승으로 10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외국인 투수들의 집단 부진과 리그 중위권 수준의 타선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정규리그 4위에 오른 것은 불펜진의 분전 덕이었다. 선발진의 부진으로 두산 불펜진은 10개 구단 중 최다인 600.1이닝을 소화하면서도 평균자책점 4.54로 1위를 차지했다. 전체 2순위 신인 출신의 김택연(3승 2패 19세이브 평균자책점 2.08)은 필승조를 거쳐 마무리로 성장하며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로 성장했고, 이병헌(6승 1패 1세이브 22홀드 평균자책점 2.89), 최지강(3승 1패 1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3.24) 등 젊은 불펜진의 호투도 돋보였다.

 

물론, 야구에서 감독에게 큰 권한을 주는 것은 결과가 잘못됐을 때 책임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의  올 시즌은 사상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의 희생양이 됐으니 실패가 맞다. 그러나 적어도 팬들로부터 “이승엽 나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이승엽 감독의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다. 과연 계약 마지막 해인 내년 시즌엔 이승엽 감독에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첫 두 시즌의 실패가 이승엽 감독에게 어떤 약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