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책이네” 공개망신에 중학생 제자 투신... 교사 ‘집행유예’ 확정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연합뉴스

 

자율학습 시간 중학생 제자에게 ‘선정적인 책을 본다’며 공개 망신을 주고 체벌을 가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유발한 교사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아동학대범죄 처벌법 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가중처벌)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12일 확정했다.

 

그는 2019년 3월 자신의 제자였던 B군에게 20분간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약 20여명의 동급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야한 책을 본다”고 말해 피해 학생을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도덕 교사였다. 그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독서할 수 있도록 자율학습을 진행하던 중 B군이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는 소설을 읽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B군의 책을 뺏은 뒤 “이거 야한 거 아니냐”며 꾸짖었다. B군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야한 종류의 책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동급생들에게 책의 삽화를 보여주며 “이 그림이 선정적이냐, 아니냐”고 물었다.

 

이후 피해 학생의 책을 다른 학생에서 넘겨주며 “선정적인 부분을 찾아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14살이었던 B군은 사건 직후 ‘A씨 때문에 따돌림을 받게 됐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적은 뒤 학교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라이트 노벨(light novel)은 일본에서 유래한 장르 문학이다. 애니메이션 풍의 삽화와 함께 흥미 위주의 가벼운 내용으로 구성됐기에 주로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이 보던 소설의 경우 삽화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성적인 내용은 없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피해 아동이 같은 반 교우들 앞에서 느꼈을 수치심이나 좌절감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및 5년간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도 함께 명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 학생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비극적인 결과까지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판시하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예방 수강을 명하기도 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은 “원심판결에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 행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교사가 훈육과 지도를 목적으로 했을지라도 아동의 정신건강과 복지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판례를 재확인했다.

 

이어 “교사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판단할 때는 교육상의 필요 등을 위한 행위였는지, 학생의 기본적 인권과 정신적·신체적 감수성을 존중·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졌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