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멸망전’ 열리나…공개매수 ‘스노우볼’ 시작됐다

영풍·MBK, 동일 매수 조건 내세워
종료일 빨라 영풍·MBK로 몰릴수도
최윤범 측 매수가 상향 움직임 포착
국가핵심기술 지정도 변수로 꼽혀
머니 게임으로 ‘승자의 저주’ 불가피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 거래일 마지막 날 상대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매수 조건을 동일하게 맞추는 승부수를 던졌다. 영풍·MBK가 최 회장 측보다 이른 공개매수 종료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업계에선 최 회장 측도 매수가 인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치킨 게임’이 벌어지면서, 누가 이기든 고려아연의 사업 동력은 크게 약화하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가운데)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강성두 영풍 사장, 오른쪽은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 연합뉴스

영풍·MBK는 4일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를 최 회장 측과 동일한 83만원으로 상향했다. 공개매수 청약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의 약 7%를 넘어야 사들이겠다고 한 최소 매입 수량 문구도 삭제해 최 회장 측과 동일한 조건을 형성했다. 사실상 공개매수 마감일이었던 이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관건은 공개매수 종료일이다. 이날 자사주 공개매입을 시작한 최 회장 측 종료일은 23일인 반면, 영풍·MBK는 공개매수 조건 변경으로 10일 미뤄진 14일이다. 같은 가격 조건에 영풍·MBK 측 종료일이 앞서면서 빠른 수익 실현을 원하는 주주들이 영풍·MBK로 몰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 회장 측으로선 자사주 매수가 인상 외엔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최 회장 측이 매수가 인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도 포착됐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가진 영풍정밀 또한 양측이 주당 3만원의 같은 가격으로 공개매수가 진행 중인데, 최 회장 측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7일 이사회 소집 안건을 의결해서다. 제리코파트너스가 이사회에서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높인다면, 고려아연 매수가도 상향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치킨게임’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쪽이 더 나은 매수 조건을 제시하면 다른 한쪽이 이를 따라가면서 투입되는 재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날 영풍·MBK의 공개매수 대금은 기존 약 2조2720억원에서 2조5140억원으로 약 2419억원 늘었다. 최 회장 측은 자사주 매입에 2조6635억원,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의 연합 공개매수로 약 4300억원 등 약 3조1000억원의 실탄을 준비했고, 영풍정밀 지분 매입에도 약 1186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으로선 정부에 신청한 국가핵심기술 지정 판단에 희망을 걸 수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자사의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신청했고, 산업부는 이날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열어 심사를 진행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 고려아연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될 경우 정부가 기술 수출, 인수·합병(M&A) 등에 개입할 수 있다. MBK가 고려아연 인수에 성공한 뒤 재매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MBK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져 고려아연을 인수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재계에선 어느 쪽이 경영권을 인수하든 상당한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 고려아연이나 영풍 모두 외부 자금에 의존해 경영권을 수성·확보하는 거라 만기 시 이 돈을 돌려줄 정도로 주가를 부양하거나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막대한 차입금이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없애 회사 성장 잠재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