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4병 마셨다”던 박대성 진술 ‘거짓’…심신미약 노렸나

실제 소주 2병 마셔…주취감형 노린 계획 진술 가능성
살인 혐의를 받는 박대성(30)이 지난 4일 오전 전남 순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달 26일 전남 순천의 한 길거리에서 흰 옷을 입은 여고생 뒤를 쫓아가는 박씨 모습. 연합뉴스·YTN 보도화면 갈무리

 

순천 길거리에서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박대성(30)이 범행 당시 “소주 4병을 마셨다”고 한 진술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박씨가 주취감형을 노리고 일부러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7일 전남 순천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8일쯤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박씨의 가게를 압수수색했다. 당시 식탁에는 안주와 소주병 4개가 있었는데 그중 술이 다 비워진 것은 두 병뿐이었다. 나머지 두 병 중 한 병은 뚜껑은 따져있지만 술은 그대로였고, 다른 한 병은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 박씨가 마신 술은 두 병뿐인 셈이다.

 

박씨는 범행 직전인 지난달 25일 오후 9시쯤부터 자신의 가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자정쯤 거리를 배회하다 그를 승객으로 오해한 한 택시 기사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후 박씨의 친형이 동생이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신고해 경찰이 출동해 5분간 면담을 진행했다. 박씨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가게 앞에 앉아 혼자 흡연 중이었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괜찮다”며 고분고분하게 답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돌아간 뒤 박씨는 피해자 A(18)양을 보고 800m를 따라가 살해했다. 그는 이후 호프집, 노래방에서 다시 술을 마신 뒤 인근 마트에 주차된 승용차를 발로 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박씨는 범행 전후 3시간 동안 그의 가게 반경 2㎞에서 다섯 차례 사람들과 접촉했다. 그와 만난 사람들은 “(박씨가) 취했지만 대화가 가능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범행 전후 이 같은 상황과 행동들에 대해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 등 진술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지난 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 “소주 4병 정도 마셔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만취 범행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범행 2시간 뒤 다른 행인과 시비를 벌인 박대성을 검거하는 경찰 모습. SBS 보도화면 갈무리

 

경찰은 주취감형을 노린 계획적인 진술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법 제10조 2항에 따르면 심신미약일 경우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물 변별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아예 없을 정도로 만취했을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박씨가 가게에서 흉기를 챙겨 허리춤에 감추고 나와 범행 후 버리는 등 계획적 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있어 심신미약을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형법은 범죄 가능성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경우 감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양지민 변호사는 지난 4일 YTN 뉴스퀘어 2PM에서 “박대성 진술이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을 주장하는 것으로도 해석을 해볼 수 있다”며 “하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 본인이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 폭력적인 성향이 나온다거나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 가능함에도 그런 상황을 일부러 야기했다는 것은 결코 감경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범죄자들의 반복되는 ‘심신미약’ 주장에 주취감경을 용인하는 법안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주취감경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된 바 있다. 앞서 2008년 조두순은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돼 1심에서 받은 징역 15년이 2심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법 개정 목소리가 커졌고, 현재는 재판장 재량에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