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심장 분야는 아웃사이더… 과감한 투자 시급” [차 한잔 나누며]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

국내 수술 가능한 곳 한 자릿수
최고 난도 요구… 의료진 태부족
적자 탓 병원 내에선 홀대 받고
환자 측 소송 부담도 기피 원인

“어린이병원이 ‘어른 병원’에 기생
이 시스템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

“어른과 어린이 싸움은 100% 어른이 이기게 됩니다. 의료 시스템도 마찬가집니다. 어린이를 따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돼 있습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뉴스위크가 선정한 10대 어린이병원에 들지만 정말 부끄럽게도 어린이병원 의료진이 성인 수술을 하기 위해 애씁니다. 계속 적자가 나니 그를 메우기 위해서 어른 수술이라도 하려는 것이죠.”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아 심장 분야를 살리는 것은 너무 늦었다.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한 해 선천성 심장병 수술 건수는 4000여건. 심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체중 1㎏도 안 되는 초미숙아로 태어난다. 김 교수가 수술한 아이는 400∼500g에 불과했다. 그 심장은 아기의 새끼손톱만 한 크기다. 뛰어난 실력의 흉부외과 교수라도, 소아 심장은 손대지 않을 만큼 수술에서 극악의 난도를 자랑한다.



이제는 그 소아 심장 수술이 가능한 곳이 전국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기피과 ‘투톱’인 흉부외과와 소아과가 만났으니 의료진 기근이다.

김 교수는 기피 원인으로 높은 소송 위험, 병원 홀대, 열악한 근무 여건을 꼽았다. 소아외과의 원가 보존율은 70% 수준이다. “주사 하나를 놓을 때도 소아는 여러 명이 달려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는데 수가 차이가 안 나니 진료할수록 적자입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도 매년 100억원 이상 적자가 납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소아 심장 분야는 ‘아웃사이더’입니다. 병원 회의에서조차 ‘소아 심장 수술 몇건 없네요’라고 말합니다. 수술 횟수도 많지 않고 돈도 못 번다는 핀잔이죠. 그런데 1시간이면 끝나는 수술 수십번 하는 것이 과연 소아 흉부외과의 존재 이유일까요? 돈 많이 버는 과가 큰소리치는 게 아니라, 사람 살리는 필수과가 병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죠.”

병원 홀대도 서럽지만 환자에게서 위안을 받기도 어렵다. ‘소송의 위험’ 때문이다. “소아 수술은 기대여명이 길다 보니 소송이 걸리면 10억원씩 나옵니다. 어떤 병원이라도 1∼2번 소송 걸리면 소아 심장 수술을 접게 됩니다.”

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여러 병원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던 한 선천성 심장병 환자도 2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소송을 걸었다. “멀쩡하게 걸어 들어간 아이”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저도 그만두고 싶은 소아 흉부외과를,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미래를 생각하면요.”

지금이라도 꺼져가는 소아 심장 분야에 심폐소생은 불가능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병원이 ‘어른 병원’에 기생해야만 하는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기승전 ‘수가’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게 전제되지 않고서는 한발도 더 못 나갑니다. 병원이나 의사 내에서 ‘합의안’ 가져오라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흉부외과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려서 ‘이제 소아 심장은 포기하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고령층 간병비에 10조원을 투입하듯 소아 분야에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20∼30위권에 있는 병원의 교수·펠로 수가 서울대 어린이병원보다 10배는 많은 것이 현재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력하게 정부를 성토했지만, 김 교수는 그동안 의료 시스템을 받쳐주는 버팀목이었다. 지난 2월 전공의 사직으로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단톡방에 교수 당직 인력 파악하는 메시지가 올라오자 그는 ‘1호’ 교수 당직을 자처했다. 노교수의 솔선수범에 김 교수 ‘밑으로는’ 자연스럽게 줄이 세워졌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왜 남들이 마다하던 수술을 해 소송에 걸렸을까. 그는 다른 여성 환자의 얘기를 꺼냈다.

“똑같은 상황의 선천성 심장병 여성 환자가 결혼을 앞두고 위험한 수술을 결심했습니다. 심장판막 중 2개가 새고, 기능이 너무 나빠 3번에 걸쳐 해야 할 수술을 24시간 동안 한 번에 했죠. 수술 중간 심정지가 와 심폐소생술도 하고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퇴원 후 외래 진료를 오지 않아 걱정돼 집까지 찾아갔는데 애 낳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적이지만 심장에 무리 가니 둘째는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이후에 또 애를 하나 더 낳았더라고요.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어요. 수술을 안 해도 죽는데, 수술을 하면 1%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거부하면 환자는 어떻게 하나요. 법적으로 안전하기 위해서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소송은 어떻게 됐을까. 소송 기간 아이의 심장이 나빠지자, 부모는 김 교수에게 3차 수술을 부탁해왔다.

“원망스럽지 않냐고요? 저도 사람인데 원망스럽긴 하죠. 그런데 아이는 살려야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소송보다 아이가 수술이 가능한 상태일지, 그게 더 걱정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