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임찬규가 후배 유영찬에게 전하는 진심...“긴 시간 아프고 힘들 것이다. 기특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6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시작에서 LG 선발 임찬규가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뉴시스

한 번 더 지면 진짜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다. 지난 5일 2024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 1차전에서 2-3으로 석패한 LG로선 2차전까지 내줄 경우 벼랑 끝에 몰릴 수 있었다. 승리가 절실한 순간, 염경엽 LG 감독이 선택한 선발 카드는 임찬규(32)였다.

 

2011년 프로에 데뷔한 임찬규는 그간 가을야구에 그리 강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아니었다. 이번 준PO 전까지 포스트시즌 통산 6경기에 등판해 9.2이닝을 소화하며 거둔 성적은 1승1패 평균자책점 6.52였다. LG가 29년 묵은 한을 씻어낸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도 3차전에 선발 등판해 3.2이닝 동안 1실점으로 잘 버티긴 했지만, 투구수가 82개로 너무 많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6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6회초 LG 선발 임찬규가 공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

이날 임찬규는 그간의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을 한방에 씻어냈다. 5.1이닝 동안 92구를 던지며 안타 7개를 맞았지만, 4사구를 하나도 내주지 않으며 2실점(1자책)으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직구(32구)는 최고 시속 146km를 찍었지만, 그 비중을 줄이고 주무기 체인지업(32구)을 비롯해 커브(25구), 슬라이더(3구) 등 변화구 위주의 투구로 KT 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선발승을 거둔 임찬규는 데일리 MVP도 함께 챙겼다.

 

경기 뒤 타선에서 4타수 2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한 신민재와 수훈선수 인터뷰에 들어온 임찬규는 “저 역시 그동안 가을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팬분들도 알고 계셨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마운드에서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비의 도움도 있었고, 포수 (박)동원이형의 리드도 좋았다. 이제 가을에 새로운 커리어를 쌓는 시작점 혹은 계기가가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6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6회초 LG 임찬규가 강판되어 마운드를 내려오며 박동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임찬규는 2,3회에 1점씩 내줬지만, LG 타선이 3회와 4회에 각각 2점을 내주면서 마운드에서 한결 편안하게 던질 수 있었다. 그는 “한 점도 내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간 게 아니다. 빅이닝만 내주지 말자, 줄 건 주면서 최소 실점으로 내려오자, 그런 마음으로 던진 게 주효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규시즌에서 던지는 것처럼 던지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직구 구속이 생각보다 잘 나오더라. 그래서 한 복판으로 던진 직구들이 맞아나가더라. 그래서 (박)동원이형과 얘기해서 4회부터는 커맨드를 잡고 던졌다. 그제서야 정규시즌처럼 던진 것 같다. 예전에 포스트시즌에서 많이 얻어맞았던 경험들이 오늘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 LG 선발투수 임찬규가 6회초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임찬규가 6회 1사까지 막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 LG팬들은 함성을 지르며 선발투수의 본분을 다한 임찬규를 격려했다. 이 상황에 대해 묻자 임찬규는 “6회를 마무리하고 손도 흔들고, 팬들의 응원을 북돋는 분위기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팽팽한 경기에 주자를 남겨두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함성 들으니까 ‘이 맛에 야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올해 LG는 임찬규에게 포스트시즌 2선발 중책을 맡겼다. 첫 번째 임무는 완수했지만, 임찬규는 2선발이라는 마음보다는 한국시리즈 2연패에 대한 강한 열망을 더욱 드러냈다. 그는 “2선발이라기보다 상대 전적에 맞게 감독님이 내보내신 것”이라고 자세를 낮춘 뒤 “우리 LG의 이번 가을 야구 목표는 10승을 거두는 것이다. 오늘 1승을 했고, 이제 9승이 남았다. 1승 1승 소중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LG 마무리 투수 유영찬이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준PO를 앞두고 LG의 뒷문을 책임지는 마무리 유영찬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임찬규 역시 이런 아픔을 잘 안다. 그 역시 3년 전인 2021시즌 도중 부친상의 아픔을 겪은 바 있기 때문. 1차전에는 발인을 치르느라 선수단에 합류하지 못한 유영찬은 2차전을 앞두고 복귀했고, 이날 9회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이겨내는 눈물겨운 역투였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2차전 kt 위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 염경엽 감독이 유영찬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이날 경기는 LG가 KT를 상대로 7-2로 승리했다. 뉴스1

유영찬에게 임찬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일”이라며 “바로 복귀해서 정말 힘들었겠지만, 기특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전했다. 이어 “큰 일을 겪었으니 긴 시간 동안 마음이 아프고 힘들 것이다. 저 역시 그랬다. 그래도 영찬이가 팀을 위해, 팬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좋은 피칭을 했다. 진심으로 고맙다. 오늘의 투구가 가족들에게 큰 위로 됐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