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으로 남몰래 도망칠 때가 있다. 며칠 전 여럿이 둘러앉은 저녁 자리에서도 그랬다. 이야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 자리는 내내 안온했는데도, 사람들 사이 끼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충분히 즐겁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는 수시로 딴생각이라는 집을 짓게 되었다. 멍하니 검은 창밖을 내다보거나 휴대폰 액정을 매만지면서. 살뜰한 대화의 갈피를 놓치면서. 왜였을까. 그날 내가 지은 집들 중에는 “가슴 아픈 집”도 하나쯤 있었을까. 어쩌면 그랬을 것이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 마음에는 시큰한 바람이 불었으므로. 금세 빈 마음이 되었으므로. “아름다운 날씨와 풍광 속에서” 더욱 빠르게 가슴 아픈 집들이 만들어진다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느린 상처”라는 제목을 곱씹어 본다. ‘상처’에 ‘느리다’가 붙은 걸 보니, 아주 천천히 아물 수밖에 없다는 뜻인 듯하다. 곪은 상태 그대로 오래 둘 수밖에 없다는. 그런 식의 상처를 우리는 알고 있다. 지닌 적이 있다. 행복이나 기쁨이 아니라 상처의 편에 서서,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련한 목수”가 되어간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