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감세’ 드라이브에 재정 빨간불 … 벙커 빠진 韓경제 [심층기획]

정부 ‘감세 통한 성장’ 선순환 기대 불구
경기악화 맞물려 긍정효과 실현 불투명

2024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91조여원 전망
국세수입 줄어 건전재정 기조마저 위협

전문가 “낙수효과 논리 작동하지 않아
‘경기대응적’으로 재정 운용 전환 필요”

윤석열정부의 ‘감세’ 정책이 한국 경제에 ‘전방위’로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세법개정안만으로 최소 81조원(정부예산안·누적법 기준)의 국세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해 경기 악화에 따른 ‘법인세 쇼크’까지 이어지면서 세수 규모는 좀처럼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정부가 재추계한 올해 국세수입 전망치(337조7000억원)는 2021년보다 6조원 이상 적다. ‘건전재정’ 기조가 재정 운용의 지상과제로 설정된 상황에서 세수 감소는 각종 사업의 예산 축소로 직결되고 있다. 문제는 ‘감세→소비·투자·고용 증가→세수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언제 가시화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향후 저출생·고령화 대응, 3대 구조개혁 등에 막대한 정부 지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묻지마 감세’를 지양하고, 재정 운용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재추계한 국세수입 전망치는 337조7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올해 예산(367조3000억원)보다 29조6000억원 감소한 수준이다. 작년 56조400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에 이어 2년 연속 ‘세수펑크’가 현실화한 셈이다.

 

올해 세수펑크는 예상보다 경기 회복이 더디게 진행된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올해 법인세 실적을 좌우했던 지난해 하반기 경기는 정부 기대와 달리 ‘상저하고’(상반기 저조 하반기 반등)에 못 미쳤다. 이는 결국 14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는 법인세 충격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정부의 감세 정책 역시 국세수입 규모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재부는 매년 세제개편안의 효과를 고려해 세입예산안을 짜는데, 각종 감세 조치가 반영되면서 정부가 계획하는 세입예산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다. 정부의 세입예산은 2022년 395조9000억원에서 2023년 400조5000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 했다가 올해는 367조3000억원으로 33조원 넘게 줄었다. 기재부에 따르면 윤석열정부 출범 첫해 단행된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62조2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세법개정안의 감세 규모는 3조원 수준에 그쳤지만, 올해는 상속세율 인하 등 다수의 감세 조치가 포함되면서 세수 감소 규모가 18조4000억원으로 다시 확대됐다.

 

경기 부진과 감세 조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국세수입 규모는 정체 상태다. 결산 기준 국세수입은 2020년 285조5000억원에서 2021년 344조1000억원으로 증가했고, 2022년에는 395조9000억원으로 400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2023년 344조1000억원을 기록하며 50조원 이상 줄어든 뒤 올해는 이보다 6조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수 감소는 여러 부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정부 예산 운용의 폭이 크게 제약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677조4000억원으로 올해(656조6000억원)보다 20조8000억원(3.2%) 소폭 늘었다. 이 중 정부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량지출은 올해 309조2000억원에서 내년 311조8000억원으로 2조6000억원(0.8%) 증가하는 데 그친다. 재량지출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한 셈이다. 실제 올해 정부예산안을 보면 전년 대비 사업 규모가 줄어든 사업도 다수 확인된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가구에 대해 생계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인 ‘긴급복지’ 예산 규모는 내년도 3501억900만원으로 편성돼 올해(3584억9400만원)보다 83억8500만원 삭감됐다. 긴급복지 예산은 2022년 2156억3900만원에서 2023년 3154억86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감축 배경에 대해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소득이 상실된 경우가 2020년, 2021년에 늘었는데 최근 정상화됐고, 집행실적이 떨어진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국세수입 감소는 윤석열정부 재정 운용 목표인 ‘건전재정’도 위협하고 있다. 실질적인 나라살림 수준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2023년 87조원 적자를 기록,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3.6%에 달했다. 올해 역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91조6000억원으로 예측돼 GDP 대비 -3.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중 3% 이내 관리’를 요건으로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추진 중인데, 2023년과 2024년 모두 세수가 줄어들면서 목표치를 초과했거나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세수결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 국고채 발행 물량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잡혀 있어 재정 부담 역시 가중될 전망이다. 내년 국고채 발행 계획 물량은 201조3000억원으로 올해(158조5000억원) 대비 42조8000억원(27%) 늘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정부가 기대하는 감세의 긍정적 효과가 언제쯤 현실화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경제사령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정부의 감세 조치가 ‘낙수효과’를 염두에 둔 정책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낙수효과는 대기업에 대한 지원 효과가 중소기업이나 후방산업까지 흘러넘쳐 사회 전체적으로 투자·고용 등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최 부총리는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에 따라 투자가 늘고, 통합고용세액공제로 고용이 증가하면 그 자체로 정책 목표가 달성된 것이지 다음 단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 세수 재추계를 발표하면서 “(정부 조세정책으로) 세수가 일부 감소할 수 있으나, 투자·소비 회복으로 성장-세수 간 선순환에 기여하고, 중장기 세입기반 확충 가능”이라고 밝힌 것을 고려하면 윤석열정부 역시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감세에 따른 세수(법인세) 증대 효과는 정부안에 근거해도 적어도 2027년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감세에 따른 정부 지출이 제약되면서 성장세도 위축되고 있다며 재정 운용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위 낙수효과에 기대서 감세정책을 취하고 건전재정을 강조하다 보니 긴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중요 데이터 중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자료가 있는데 2024년 4월 보고서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가 2022년 4월 보고서보다 낮게 나오고 그 차이도 크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는 법인세 인하로 투자와 고용이 증가하고 성장률이 높아져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내부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반도체 수출이 늘어도 내수로 이어지지 않고 지난 2분기엔 역성장을 하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건전재정에 사로잡혀 국채 발행을 터부시하기보다 ‘경기대응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