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위영상물 반포’ 혐의 사건 10건 중 4건은 ‘수사 중지’

최근 3년간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영상물 조작) 범죄 등에 적용되는 ‘허위영상물 반포’ 혐의 사건 10건 중 4건은 ‘수사중지’ 결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피의자나 참고인 소재를 알 수 없어 더는 수사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경찰은 수사중지 결정을 내린다. 텔레그램 등 폐쇄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의 비협조가 주요 이유인데, 디지털 범죄에 대응할 수사력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일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검경수사권이 조정되고 경찰에 수사중지 권한이 생긴 후 지난해까지 접수된 496건의 허위영상물 사건 가운데 수사중지 결정된 사건은 42.1%(209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21년이 28.8%(156건 중 45건), 2022년 71.9%(160건 중 115건), 2023년 27.2%(180건 중 49건)다.

 

이는 전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수사중지 비율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범죄통계를 편집·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수사중지 비율은 2021년 8.1%, 2022년 11.8%, 2023년 10.9%로 10% 안팎이다. 경찰은 텔레그램 등 보안메신저를 활용한 범죄 특성상 “피의자를 추적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연도별 수사중지 비율 차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높은 수사중지 비율 탓에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하고도 해결할 길이 없어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허위영상물 반포 관련 수사중지 사건은 대부분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결정된다. 상급경찰관서장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피의자를 알 수 없으면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결정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들은 합성물 유포 규모를 알 수 없어 상당히 불안해한다”며 “경찰이 ‘텔레그램이라 못 잡는다’는 식으로 말하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딥페이크 범죄 수사 한계에도 수사력 개선 논의에 소홀하던 경찰이 올해 딥페이크 범죄가 확산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지적한다.

 

경찰은 8월28일부터 내년 3월까지를 집중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시·도 경찰청이 중심이 돼 딥페이크 범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 만에 접수된 367건 등 올해 812건을 접수했고 387명을 검거했다. 김민지 부연구위원은 “딥페이크 범죄 수사가 이전에 미온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올해 불거진 서울대 ‘n번방’ 사건에서도 개별 피해자들이 앞서 서대문·강남·관악·세종경찰서에 고소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수사중지됐고, 지난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재수사 지시 이후 서울경찰청이 수사에 나서 피의자를 검거해 검찰에 넘긴 바 있다.

서울대 동문 상대로 디지털 성범죄를 벌인 피의자 박모(40)씨가 검거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 관계자는 “수사 역량을 시·도 경찰청에 집중했기 때문에 일선 경찰서 역량과 수사기법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딥페이크 범죄 수사는) 고도의 수사기법이 필요한데 수사상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범죄 수법이 진화하지만 수사기법도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수사과를 운영하는 시·도 경찰청과 달리 일선서는 경제 범죄와 사이버범죄 수사팀을 통합해 수사력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기술 발달에 따른 디지털 성범죄 특성에 맞는 수사기법과 전담인력 등 대응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부연구위원은 “불법 영상물을 빠르게 차단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수사기관에 명백한 불법 영상물에 대한 삭제, 차단 권한을 주고 사후 통제하는 응급조치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사기관과 정보통신 사업자 등이 협력해 성착취물 공급을 차단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산업화한 디지털 성범죄 수익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청은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파벨 두로프를 기소한 프랑스 수사 당국에 국제사법형사 공조를 요청하고 “성인 대상 범죄까지 위장수사를 확대하는 등 수사중지 비율 개선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