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노벨상 휩쓰는 AI

‘리튬이온 배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구디너프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교수는 40여 년 전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97세의 나이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 중 역대 최고령자다. 네이처에 따르면 2010년대 연구성과를 낸 후 노벨상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차가 화학상은 30년,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도 28년, 29년이 걸렸다. 노벨상 수상까지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이런 노벨상 관행을 깼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AI의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학 명예교수와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받았다. 화학상도 AI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 워싱턴대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 수석연구원 존 점프에게 돌아갔다. 허사비스와 점프는 불과 4년 전 단백질의 3차원 구조 예측 모델 ‘알파폴드2’를 내놓았는데 놀라운 성과를 냈다. 알파폴드2는 10년간 알아내지 못한 특정 단백질 구조를 30분 만에 밝혀냈고 신약과 백신, 신소재 개발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힌턴이 딥러닝을 선보인 것도 12년 전이지만 이제 AI는 거의 모든 물리학의 모델링과 분석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가설설정부터 논문작성까지 연구 전반을 이끄는 AI 과학자도 등장했는데 머지않아 노벨상까지 받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다. 힌턴은 “내가 한 AI 연구를 후회한다”며 내부고발자로 변신했다. 그는 “인류가 AI에 지배당하는 공상과학영화가 20년 안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했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국가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도 AI가 스며든 지 오래다. 자율주행과 스마트폰 등 주요 산업에서 AI 혁신경쟁이 불붙고 딥페이크 영상 등 AI 활용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우리는 AI 산업지원과 위험대응 등의 근거가 되는 기본법조차 없다. 22대 국회 들어 10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는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며 본 척도 않는다. 후진정치가 AI 강국 도약의 발목을 잡고 AI발 재앙을 키우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