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서 폐기처분한 '유해도서'…'노벨상' 한강 "암울했었다"

5·18 소설로 박근혜 정부 지원 배제…축전도 못 받아
"정치, 문화 지원하되 간섭 말아야"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과거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수난을 겪은 사실이 11일 재조명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문화예술에 대해선 과도한 정치적 색채를 빼고 바라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학평론가 출신인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10일) 자신의 SNS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여야 가릴 것 없이 박수치며 기뻐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며 "한강 작가는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분류됐던 작가"라고 적었다.

 

작가 한강. 뉴스1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박근혜 정부가 좌파 예술인 및 단체 명단을 비공개로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한 사건이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특검팀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한 작가가 포함된 점을 확인했다.

 

한 작가는 지난 2014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 선정·보급 사업 3차 심사에서 '사상적 편향성'이 지적돼 탈락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한 작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암울했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20년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당시 인터뷰에서 "2013년에 대부분의 이 소설을 썼는데 그때는 굉장히 암울했다"며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책이 나오면 신문에 기사 한 줄이라도 나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았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관례와 달리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도 유명한 일화다. 국정농단 특검팀은 수사 결과 한 작가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소설가였기 때문이라고 봤다.

 

과거 한 작가의 소설이 학교에서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돼 폐기된 사실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강민정 전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경기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폐기된 도서 2528권에는 '채식주의자'가 포함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 출신인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수장인 경기도교육청이 해당 소설의 폐기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문화'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과도한 정치적 색채를 빼고 작품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뒤늦게 터져나왔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작가의 수상을 언급하며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며 "문학과 예술 작품의 잘못된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부터 그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고 말했다.

 

강 의원도 "문화는 행정과 정치가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국가 예산에, 국가 유산에 꼬리표가 있을 수는 없다"며 "우리 음악이, 영화가, 문학이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정치는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