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의 고산지대에서 만년설 빙하 일부를 채취한 뒤 얼음으로 변형해 판매해 온 발타사르 우슈카 노인이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런 식으로 산에서 얼음을 캐는 일을 하는 이는 우슈카 말고는 더는 없어 그는 일명 ‘마지막 얼음 장수’로 불리며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한국 방송에 출연해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낯익은 얼굴이다.
1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우슈카는 전날 집에서 기르던 황소한테 받혀 바닥에 쓰러지며 크게 다쳤다. 결국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우슈카가 살았던 에콰도르 중부 침보라소주(州) 구아노(Guano) 지방정부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슈카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아이콘이 된 어르신이자 마지막 산악 얼음 수확가였던 고인의 별세를 알리게 되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5세 때 아버지로부터 산에서 얼음을 캐 시장에 내다 파는 직업을 물려받았다. 이후 평생 한 번도 다른 일을 갖지 않고 얼음 수확에만 전념했다.
고인의 고향인 침보라소주에는 해발 6310m 높이의 침보라소 산이 있다.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이 산은 과거 용암을 내뿜으며 폭발한 화산이었으나 지금은 활동을 멈춘 휴화산이다. 고인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침보라소 산의 5200m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곳에는 만년설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생긴 빙하가 있다. 고인은 삽 등으로 이 빙하를 깨 무게가 약 20㎏에 달하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채집했다. 이후 산에서 내려와 동네 시장에서 얼음을 팔았다.
냉장고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고인처럼 침보라소 산에서 얼음을 캐 생계를 이어가는 이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한때 20개 넘는 작업조가 동시에 얼음을 채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냉장고의 보편화에 따라 침보라소 산의 얼음 수집자들도 차츰 자취를 감추더니 어느덧 고인 한 사람만 남았다.
덕분에 고인은 유명인이 되었다. 에콰도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방송에 출연해 얼굴과 이름을 널리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방영된 EBS1 ‘세계테마기행’에 등장한 적이 있다. 그해 10월1일 전파를 판 ‘침보라소 산 얼음 장수’ 편에서 황인범 여행작가와 만나 대화를 나눴다. 당시 고인은 “얼음을 캐고 가져가는 건 너무 힘들어서 전부 남자가 하는 일”이라며 “가공된 얼음이 없던 시절에는 이곳(침보라소 산)에 올라와 얼음을 캐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회상했다.
고인의 삶을 주제로 한 시(詩)도 있다. 권달웅 시인의 작품 ‘마지막 얼음 장수’가 그것이다. “발타사르는 / 열다섯 살 때부터 여든까지 / 곡괭이로 얼음을 캤다 … 만년설 얼음을 캐서 파는 발타사르가 / 마지막 얼음 장수가 될 것이다.” (‘마지막 얼음 장수’ 중에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은 고인은 73세가 되어서야 초등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2017년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행한 작업의 인류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에콰도르 국립문화유산연구소(INPC)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생애 말년에는 산에 오르는 대신 구아노 박물관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