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를 영국에서 분리시켜 독립국으로 만드는 운동에 앞장섰던 알렉스 새먼드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69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별세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식어든 상황에서 새먼드의 갑작스러운 타계가 스코틀랜드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
12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새먼드는 발칸반도 북마케도니아의 유명한 호수 휴양지 오흐리드(Ohrid)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그곳에서 문화외교를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해 연설한 직후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목표로 내걸고 고인이 창당한 정당 알바(Alba)는 영국 외교부에 시신 운구에 관한 협조를 요청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는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조기를 게양했다.
영국 정계는 술렁이는 표정이다. 존 스위니 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깊은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며 “알렉스는 그 자신이 사랑하는 스코틀랜드,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고 추모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고인은 스코틀랜드와 영국 정치의 기념비적 인물이었다”며 “영국 정부를 대표해 고인과 유족, 그리고 고인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를 놓고 고인과 견해를 달리했던 리시 수낵 전 총리도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헌법적 사안에 대해서는 고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의 뛰어난 토론 기법이나 정치에 대한 열정만은 부인할 수 없다”며 “고인이 편히 잠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별세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의 불쏘시개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인은 1954년 12월 스코틀랜드 린리스고에서 태어났다. 1973년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스코틀랜드 지역 정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에 입당했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중세 역사를 전공한 고인은 졸업 후 공무원, 은행원, 기업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1987년 SNP 소속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했다. 1990년에는 SNP 당 대표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의 자치권 확대를 위해 자치의회와 자치정부 수립을 허용했다. 이후 고인은 영국 하원은 물론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에서도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보폭을 넓혀 나갔다.
고인은 2007년 SNP가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의 다수당이 됨에 따라 자치정부 수반에 취임했다. 2014년까지 7년간 재임하며 스코틀랜드 주민들을 위한 의료 개혁, 스코틀랜드 대학생들의 학자금 부담 경감 등 업적을 세웠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관련 주민투표에서 반대 의견이 55%로 찬성(45%)을 압도함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치정부 수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고인은 자치정부 여성 직원 성추행 등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연루되며 정치적으로 하향곡선을 그었다. 후임자인 니콜라 스터전 자치정부 수반과의 갈등도 극에 달해 2021년 결국 고인은 SNP를 탈당하고 스코틀랜드 독립을 목표로 하는 ‘알바’라는 정당을 새로 창당한 뒤 그 대표가 되었다. 알바란 스코틀랜드 고유어로 ‘스코틀랜드’를 뜻한다. 하지만 그 무렵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스코틀랜드 독립 열기는 시들해졌고, 알바당은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원래 독립 왕국이었던 스코틀랜드는 같은 브리튼 섬에 자리한 잉글랜드와 치열하게 다퉜다. 둘 간에는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도 빈발했는데, 1296년 스코틀랜드를 지배하기 위한 잉글랜드의 침략이 대표적이다. 당시 잉글랜드에 맞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키고자 싸우다가 결국 패한 뒤 붙잡혀 처형당한 인물이 오늘날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통하는 윌리엄 월레스다. 월레스의 일대기를 그린 할리우드 영화 ‘브레이브하트’(1995)는 그 시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가 어땠는지 잘 보여준다. 스코틀랜드는 결국 1707년 잉글랜드와 합쳐 영국의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