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포인트 내리면서 통화정책 ‘긴축’ 시대가 3년2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이창용호(號)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침체된 내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통화 ‘완화’ 쪽으로 키를 돌렸다. 하지만 일각에서 방향 전환이 늦었다는 ‘실기론’과 함께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과 가계대출이 다시 튀어오르는 것을 막고, 소비와 건설·설비 투자를 늘리기 위한 정교한 후속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출이자 부담 얼마나 줄어들까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고금리 장기화 속에 늘어난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했던 기업과 가계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떨어지면서 가계와 기업의 연간 이자 부담액이 6조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경협이 지난 2010년 이후 기준금리와 가계·기업 대출 금리 자료를 토대로 회귀 분석한 결과, 가계 대출금리는 누적 0.14%포인트, 기업 대출금리는 누적 0.19%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를 토대로 산출한 연간 이자 상환 부담은 가계 2조5000억원, 기업 3조5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가구당 이자 상환 부담액이 평균 약 21만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는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하락폭인 0.25%포인트 만큼 떨어지면 가계대출 차주의 연간 이자 부담이 총 3조원, 1인당 평균 15만3000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로 가장 고통받았던 소상공인(자영업자)을 포함한 기업의 이자 부담도 감소한다. 한은이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내리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총 1조7000억원, 1인당 평균 이자 부담은 약 55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이자 부담은 1조2000억원(1인당 69만원) 감소해 체감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
◆가계부채, 내수 여전히 ‘불안’...“한은, 너무 낙관적”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 배경 중 하나로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증가세가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 8월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증가액(전월대비, 9조6259억원)이 9월에는 5조6029억원으로 다소 둔화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화여대 석병훈 교수(경제학과)는 “그동안 금리를 동결해서 가계부채가 잡혔나”라며 “지난 8월 이미 물가가 잡힌 상태에서 내수 침체라는 불필요한 비용을 치를 필요 없이 진작에 금리를 낮췄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은 착시효과”라며 “금융당국과 은행이 올해 말 가계대출 총량 규제 목표 달성을 위해 ‘영끌 수요’(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를 강제로 눌러놨지만, 내년 초에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값 역시 여전히 불안하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서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하락하면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은 1년 이후 0.43%포인트, 서울은 0.83%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석 교수는 “수도권 중심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 범위를 전세자금 대출과 정책성 대출로 확대하고 DSR 상한을 현재 은행 40% 제2금융권 50%에서 각각 35%, 40%로 낮추는게 (금리정책보다) 더 효과적”이라며 “서울 핵심지에 재개발·재건축 등을 통해 신규 주택 공급 늘어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실수요자들 주택 구입을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가 소비와 투자,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보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나라 중 호주를 제외하고 스위스, 캐나다가 금리를 내린 것은 내수 때문이었다”면서 “가계부채라는 ‘닭’을 잡기 위해서 금리라는 ‘소’ 잡는 칼을 동원해서 되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금리 인하 타이밍이 늦어 내수 부양 효과가 반감되는데다, 0.25%포인트 내려도 여전히 과거보다 높은 상황이어서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김정식 명예교수는 “내수를 부양하려면 금리를 더 많이 내려야 하지만, 물가와 부동산 때문에 어렵다”면서 “재정정책을 함께 써서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내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LG경영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한은은 수치를 너무 중요시 한다”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좋아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높겠지만, 경제주체들의 체감 경기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은 그대로라면서 금리를 내렸다. 이상한 금리 인하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