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국왕 조지 6세는 어려서부터 심하게 말을 더듬어 큰 고통을 겪었다. 그는 70년 214일을 재위하여 세계 최장수 국왕을 기록하고 재작년에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빠다. 조지 6세는 희대의 괴물인 히틀러의 광기와 침략에 맞서 1939년 9월 3일 대독일 전쟁을 선언하는 라디오 생방송 ‘전시 스피치’(wartime speech)를 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는 ‘스피치 불안감’을 가진 조지 6세가 승리가 역사의 순리라는 확신과 병사와 시민의 용기를 북돋우는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담긴 스피치를 해내는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조지 6세는 의사 표현의 어려움으로 많은 곡절을 경험했다. 왕자(요크 공) 시절 시민들 앞이나 공적 상황에서 불안감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롱받는 곤경에 빠지곤 했다. 공식 행사의 식순으로 불가피한 스피치에서 폭망하는 일도 잦았다. 당연히 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를 피하고, 참석해도 적절한 언행을 하지 못하고 몸을 사렸다. 자존감은 사라지고 자기 비하와 자책감에 시달렸다.
‘버티’(조지 6세의 아명)의 불안감은 사람들을 잘못 만난 탓이 컸다. 왼손잡이에 안짱다리였던 ‘버티’는 강제적인 교정을 하려는 사람들에 싸여 양육되었다. 유모들은 자신들에 더 의존하게 만들려고 배고픔을 겪게 하고, 꼬집으며 고통을 주기도 했다. 아버지(조지 5세)는 말을 잘할 수 있는 친절한 가르침보다는 윽박지르고 소리쳤다. 형(에드워드 8세 국왕으로 스스로 퇴위)은 동생을 조롱하고 놀려댔다. 치료를 위해 만난 높은 명성과 학위를 지닌 언어전문가들은 ‘뒹굴면서 단어 내뱉기’ ‘입속에 왕 구슬 넣고 말하기’와 같은 이상한 치료 방법으로 절망과 분노를 증폭시켰다.
조지 6세의 곤경은 사람을 제대로 만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애정 어린 도움을 준 아내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면서다. 특히 조지 6세의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려는 진정성과 허례허식적인 방법 대신 치료 효과를 실증적으로 공유하는 라이오넬에게 깊은 신뢰감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스피치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스피치를 할 수 없던 조지 6세가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시 스피치’를 훌륭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개인도 나라도 세계도 또 자기 자신도 구하게 된 것이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