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절벽’에 軍 안팎 ‘女 복무 확대론’ 대두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병역자원 확보 ‘빨간불’… 해법은
2040년 상비군 수 40만명 이하로 감소
일각 ‘여성 징병제’ 도입 주장도 있지만
사회적 갈등 격화 우려에 논의 지지부진

여군 간부 지원율 2023년부터 하락 추세
복무 기피 이유 ‘직업적 불만족’이 최다
급여 인상·숙소 개선 등 주요 과제 꼽혀

한국 사회의 인구절벽이 현실화하면서 병역자원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2040년부터는 상비군 수가 40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성, 외국인, 민간군사기업(PMC) 등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여성 복무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병력 부족 차원에서나 양성평등 차원에서도 여성 인력 활용 확대는 불가피하다. 다만 이스라엘이나 노르웨이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성징병제에 대해서는 안보 환경이나 사회·문화적인 상황이 다른 만큼 일률적인 적용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여성징병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국방부나 전문가들이 여성징병제가 아닌 ‘여군 복무 확대’에 초점을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여군 비율 2027년까지 15.3% 확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병력 감소 대책을 묻는 의원의 질의에 “여성 인력 활용하는 문제, 민간 용역을 활용하는 문제, 다양한 상근제도 현역으로 바꾸는 문제 등 병력 부족 문제를 최대한 개선해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여군 복무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군의 지원율과 장기복무율 등을 높여서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국방부는 현재 10% 수준의 여군 비율을 2027년까지 15.3%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군은 상비군 50만명을 목표로 해왔는데 이는 첨단과학기술 군대 건설이라는 목표,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규모를 모두 고려한 수치다. 유·무인 복합체계를 도입한다 해도 40만명 밑으로 떨어진다면 전투병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초급, 중급 간부의 수를 늘려 중간층을 두껍게 하는 항아리형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여군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여성징병제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여성징병제는 단순히 부족자원 때문에 부족하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 않나”라며 “관련된 문화나 국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시설도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소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성의무복무, 여성모병제, 남녀평등복무제 등 다양한 방안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특히 여성의무복무’는 그동안은 병력 감소 차원이 아닌 ‘병역의무를 남성들만 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보는 젠더 갈등 차원에서 거론된 측면이 크다.

 

독고순 전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문화적 이슈가 군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여성징병제에 대한 논의는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논의가 가시권에 진입할 경우 젠더 갈등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며, 논의를 풀어가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찰·해양경찰·소방·교정 공무원에 지원하려면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여성 희망 복무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을 때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개혁신당은 여성이 간부가 아닌 병으로도 근무할 수 있는 제도로 연간 1만∼2만명의 병역자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여성에게도 매력적인 직업軍 돼야

 

군 당국과 대다수 전문가는 군 복무를 직업적으로 메리트를 느낄 수 있도록 여군의 기회와 복무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군의 복무여건을 개선하고 남군들이 차지해오던 ‘핵심 보직’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면 여성들의 지원도 늘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도 군이 인기 있는 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근력 위주 전투에서 첨단과학기술전으로 전쟁 양상이 변화하면서 성별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미국도 걸프전에 투입된 여군의 전투임무 수행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했고, 2000년대 들어와서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인 중 여군이 10% 이상이었다. 이 같은 경험 덕분에 2016년 보직 제한 폐지 이후 미군에서 여성의 진출을 가로막는 정책적 장벽은 사실상 대부분 철폐됐다.

 

다만 군 간부란 직업은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떨어지는 추세다. 여군 간부 지원율도 최근 하락하고 있다. 여군 부사관의 경우 2022년까지는 증가하는 추세였으나 2023년에는 23.1%나 하락했으며 전역자 수도 2022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여군들이 복무여건을 꺼리는 이유는 성평등의 문제보다는 임금, 복지 등으로 인한 직업적인 불만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이 육군으로부터 제출받은 ‘미래 육군 여군 인력 활용성 제고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이직 시 군에서 받는 봉급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조기 전역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70%가 넘는 인원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야근 및 수당의 현실화와 노후화된 간부숙소 개선, 육아휴직 대체인력 등을 주요 개선과제로 꼽았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주거환경 및 육아로 인해 직업 안정성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 전용 화장실, 샤워실 등 필수시설 부족 문제도 여군 복무에서 장애 요인 중 하나였다. 최근 들어 양적으로는 충족되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보고서에 나온 여군들의 심층면담 결과에 따르면 많은 여군은 남성 화장실로 들어가 임시 칸막이가 설치된 여성화장실에 들어가거나 필수시설을 이용하려면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소규모 부대의 경우 필수시설이 아예 없어 경력관리를 위해 가야 하는 보직임에도 여군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여군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대학별로 선발하는 남성과 달리 권역별로 선발하던 여성 학군단(ROTC)을 대학별로 선발하거나 사관학교의 여성 생도 수를 늘릴 필요도 있다. 더 나아가 군 간부뿐 아니라 병으로도 자원할 수 있게 길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군 복무 경력이 사회에 어떤 가점이 될 수 있는지 범정부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하게 하거나 자원해서 병으로 입대하면 공직에 진출할 때 유리하게끔 제도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여성들의 군복무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유 의원은 “여성지원병제, 시니어 아미와 같은 아이디어를 논의할 국방부 차원의 ‘병력급감 대비 미래 병역제도 개선 TF’ 신설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