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대기업들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을 노골적으로 압박해 물의를 빚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윤 의원 측은 최근 삼성·현대차 등 10대 그룹 대관 담당자를 만나 기금 출연계획을 요구했다고 한다. 앞서 야당 의원들은 기금 출연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10대 그룹 총수들을 국정감사장에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의원실은 기업 총수의 국감 증인 출석을 볼모 삼아 출연금을 더 증액하라고 했다니 어이가 없다. 국회 농해수위가 해마다 기업의 모금 참여를 독려하곤 했지만, 개별 의원실에서 이렇게 대놓고 기업 팔을 비트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상생기금은 처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농민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의 상생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FTA 체결로 혜택을 보는 민간기업과 공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토록 하고 이 돈을 농어촌 장학, 복지증진, 의료·주거개선사업 등에 쓰자는 취지다. 기금 조성이 시작된 지 8년이 흘렀지만 걷힌 돈은 목표액의 25% 수준인 2449억1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마저 60% 이상은 공기업이 냈다.
민간기업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연간 1000억원의 부담도 문제지만 명분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연이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뚜렷한 유인책도 없어 이사회 의결마저 여의치 않다. 박근혜정부 시절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으로 호되게 당한 트라우마도 만만찮아 기업으로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기업은 정치권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아직도 농어촌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기업 돈으로 표를 사려는 구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민망하고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상생기금 개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현재의 상생기금은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반강제적 준조세에 가깝다. 근본문제는 기업이 왜 농어민 지원을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FTA 체결로 인한 이익을 산정하기 쉽지 않지만, 설혹 산정이 가능하다 해도 기업은 늘어난 이익만큼 이미 세금을 냈다.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더 걷은 세금으로 정식예산을 편성해 농어민을 지원하는 게 순리다. 정치권은 기업을 겁박할 게 아니라 잘못된 법과 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을 참고해 동반성장지수 가점부여, 공정거래위원회 직권조사 면제 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