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홍콩은 추억으로만 남게 될까

“사람 많은 곳에서 만나야 돼!”

지난달 하순, 우산혁명 10년을 맞아 홍콩 출장을 가며 현지에서 취재원을 만날 계획이라고 하니 아내가 당부했다. 혹시 취재원을 가장한 의심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과한 걱정일 수 있으나 앞서 지난 5월 톈안먼사태 35주년을 앞두고 오후 10시에 공안들이 불쑥 집으로 찾아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은 일이 생각난 듯했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홍콩으로 갈 때는 지난 6월 개통한 고속철을 탔다. 기존 침대기차보다 절반 가까이 소요시간을 단축해 베이징에서 홍콩까지 12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며, 오후 늦게 출발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는 기차편이다. 이 기차의 표 값은 침대칸 기준 1200위안(약 22만8000원)가량이었다. 소요시간이 3시간30분 정도로 더 짧고, 가격도 700∼800위안대에 나온 항공편이 많은데 굳이 기차를 탈 이유가 있을까.



같은 방을 쓰게 된 모녀에게 이런 의견을 이야기하며 왜 굳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탔는지를 물었다. 딸이 밤에 노트북으로 일을 해야 해서 기차를 탄 것이고, 돌아갈 때는 비행기를 이용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특이한 경우 외에는 사실상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노선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노선 개통 때 일각에서 제기된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왜 나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홍콩 서구룡역에 도착하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홍콩 특별행정구기가 함께 걸려 있었다. 구룡반도와 홍콩섬 등을 잇는 페리 선착장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깃발을 함께 게양할 때는 오성홍기가 더 높고 크게 걸려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었겠지만 더 크게 나부끼는 오성홍기는 일국양제 중 ‘일국’에 방점을 찍는 듯했다.

옛 명성을 다소 잃어가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홍콩은 홍콩이었다. 거리와 대형 쇼핑몰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고, 밤을 밝히는 홍콩섬의 화려한 스카이라인도 여전했다. 다만 미묘한 이질감도 느껴졌다. 서구룡역에 도착해 환전소에서 줄을 섰을 때 앞에서 먼저 환전하던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불친절하던 직원이 기자에게는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등 은근한 반중 감정 역시 있는 듯했다.

홍콩의 미관을 해친다는 표현은 좀 과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취향과 맞지 않는 붉은 바탕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75주년 축하’ 문구가 곳곳에 도배돼 있는 모습이 가는 곳마다 눈길을 끌었다. 영화 ‘중경삼림’으로 잘 알려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도 기둥과 옆 유리가 온통 해당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왕페이는 영화에서처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쭈그려 앉아도 짝사랑하는 량차오웨이의 집을 훔쳐볼 수 없게 됐다.

취재원을 만나 주민 입장에서 느끼는 홍콩의 변화 양상을 전해 들었다. 익명을 전제로 한 짧은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가 말했다. “애초에 인터뷰에 응할지 말지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장소를 일부러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으로 잡았어요.” 기자 등으로 위장해 반체제 인사를 골라내려는 중국의 정보요원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조심스러웠다는 것이다. 아내의 당부가 떠오르며 쓴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