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아트테크(아트+재태크)’ 상품을 판매했다가 불법 유사수신 논란에 휩싸이는 갤러리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일부는 실체가 없는 사업을 운영하며 후순위 투자자의 돈으로 다른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불한 ‘폰지사기’로 드러나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에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의 A갤러리를 소유한 주식회사 대표 김모(40)씨에 대해 사기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됐다.
업체 홍보자료 등에 따르면 A갤러리는 앞서 미지급 사태를 일으킨 업체들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투자 상품을 판매했다. 갤러리 측은 그림 소유권을 고객에게 팔면서 실제 그림은 호텔·병원 등에 빌려주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매월 수수료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A갤러리의 경우 연 12%의 고수익을 보장하고, 3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갤러리가 “100% 재매입을 보증한다”며 사실상 원금 보장 상품이라는 식으로 홍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모씨를 고소한 A갤러리 전 직원 B씨는 “A갤러리는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당연히 원금을 보장할 수 있다는 식으로 교육했고, 나도 들은 내용대로 고객들에게 설명했다”면서 “2022년 하반기 전에는 없었던 ‘재매입 보증’ 항목까지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상품이 불법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A갤러리는 금융업이 아닌 전자상거래업체로 등록돼 있는데, 이처럼 허가 없이 원금과 수익 보장을 내세우면서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미반환 사태가 일어나도 투자자는 금융당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그림 투자 계약을 맺은 피해자는 200명, 총 피해액은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B씨는 “이번달부터 고객들의 실질적인 투자 자금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판매된 그림 가격이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에게 그림을 팔 때 한국미술협회(미협)의 호당가격확인서를 토대로 그림 가격을 책정했다고 홍보했지만, 이는 시세를 반영했다는 보장이 될 수 없다. 지난달부터 경찰이 수사 중인 동대문구 ‘갤러리K’도 똑같이 미협 호당가격확인서를 이용해 무명 작가의 그림을 고가의 그림처럼 속여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캐슬린 김 변호사(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미술품 가격을 호나 규격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상품과 달리 ‘정가’가 없어 작가 본인 또는 판매하는 갤러리가 얼마든지 호당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며 “1000만원에 팔리던 작품이 다음해 5만원에 팔릴 수도 있는 것이 미술품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A갤러리 측은 “갤러리가 ‘원금 보장’을 주장했다고 한 것은 오해”라며 “계약이 끝난 그림을 높은 확률로 재판매 매칭을 시키고 있어 자신감을 표명하는 차원에서 한 말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아트테크를 내세운 갤러리가 연이어 투자 사기 논란에 휘말리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저작권·조각 투자를 빙자해 900여억원을 가로챈 일당을 구속 송치했다. 피해 규모가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갤러리K 사건도 최근 서울경찰청으로 이첩돼 수사 중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동산 같은 경우 가격이 투명하고 누구나 가격 검증을 할 수 있어 조각투자를 하더라도 위험성이 작지만, 미술품은 그 반대라 특히 폰지사기가 발생하기 쉽다”며 “개인이 소액 조각투자를 할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거래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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