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 위한 우리말 수업… 눈 반짝·귀 쫑긋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한겨레중고서 ‘1일 한국어 교실’

‘말 잘하기보다 잘 말하기’ 등 주제로
KBS 아나운서들 찾아가는 강의 진행
예능 영상도 보여주며 분위기 이끌어
“갸 겨 교 규” 학생 발음에 “잘한다” 격려

아이들 “한글을 어머니처럼 존경한다”
“독창적이고 과학적 문자” 표현하기도
한겨레중고 “힘차고 밝은 미래 응원”

“‘잘 말하기’란 상대의 마음을 읽고 얘기한다는 겁니다.”

김은성 KBS 아나운서의 ‘말 잘하기’와 ‘잘 말하기’ 차이 설명에 한겨레중고등학교 강당에 모인 중학생 30여명의 귀가 쫑긋했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 주관으로 지난 8일 경기 안성시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KBS 아나운서실이 진행한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한국어 수업 후, 이진희 교장(앞줄 왼쪽 다섯 번째)과 배창복 KBS 아나운서(〃 왼쪽 두 번째), 이승현 아나운서(뒷줄 오른쪽 네 번째), 재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북한이탈주민 자녀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특성화 중·고등학교인 이 학교는 교육부 인가로 2006년 경기 안성시에 개교했다. 3년씩 재학해 고교 과정까지 마치면 고졸 학력이 주어진다. 중국과 북한·남한 출생 재학생 비율은 7:2:1이며, 출생 지역과 생활 기간에 따라 발음이 어색한 정도가 달랐다. 2022년까지 누적 졸업생 총 580명 중 204명은 4년제 대학교에 진학했고, 175명은 2·3년제 대학에 갔다. 201명은 취업과 진학준비를 택했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 주관으로 KBS 아나운서실이 지난 8일 이곳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일일 수업 이야기를 전해본다. 김 아나운서와 이승현·배창복 아나운서가 오후 1시30분부터 차례로 45분씩 수업을 맡았다.

◆“갸, 겨, 교, 규…” 어색한 발음에도 박수

김 아나운서의 ‘말 잘하기보다 잘 말하기’ 주제로 문을 연 수업은 ‘발음은 또렷하게, 발표는 자신 있게’ 주제의 이 아나운서 강의로 이어졌다. 평생의 언어 능력은 중학생 시기에 완성된다며, 일상에서 익힌 단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오후 수업이라 학생들 집중력이 흐려질 법했는데, 비장의 무기로 꺼낸 예능 프로그램 영상이 강당 분위기를 바꿨다.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그룹명으로 개그맨 정형돈과 가수 데프콘이 2017년 발표한 ‘한 번도 안 틀리고 누구도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들리면서다. ‘간장공장 공장장’과 ‘중앙청 창살 외창살’ 등 가사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부른 데프콘 모습에 학생들은 폭소했다.

강당 무대에 올라 ‘갸, 겨, 교, 규’ 발음을 선보인 학생에게 이 아나운서는 “잘하고 있다”며 격려했고, 차분히 말을 이어간 발표자들에게 현장에서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도 박수를 보냈다.

배 아나운서의 수업은 조선 후기 소설 낭독가인 ‘전기수’ 얘기로 시작됐다. 전기수의 돈벌이 방법 언급은 특히 흥미를 끌었다. 반드시 들어야 할 대목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면,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 사람들이 돈을 전기수의 바구니에 던진다는 설명에 학생들 눈과 귀가 쏠렸다.

이야기 전달 능력을 갖춘 ‘전기수’는 사람의 목소리에 표정이 있다는 설명을 위한 예시다. ‘철수가 땅에 떨어진 돈을 집어 듭니다’라는 문장을 기쁨·슬픔·화남·사랑스러움 네 가지 감정으로 읽자며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한 배 아나운서는 “목소리의 표정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자랑스러운 한글”…“정말 과학적이에요”

앞줄에서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김도훈(15)군과 설유정(15)양은 한글을 ‘어머니’와 ‘자랑거리’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이름과 나이 공개에 동의했다.

수업 후 인터뷰에서 한글을 ‘어머니’로 정의한 김군은 “어머니처럼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며 “어머니처럼 존경하고 어머니처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소리를 그대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 자랑스럽다”며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설양은 “한글은 세계적으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강조했다. 한글을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로 생각한다면서다. 특히 “한글은 다른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퐁당퐁당’이나 ‘깡충깡충’ 같은 귀여운 언어를 표현할 수 있다”면서 다른 국가 언어와 대조된 특성을 집어내 기자를 감탄케 했다. 평소 독서와 노래 듣기로 한국어를 공부해왔다는 두 학생은 이날의 수업이 향후 꿈 실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이진희 한겨레중고 교장은 “한국어는 모든 교과 학습의 기초 도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의 기본”이라며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감 있게 말하다 보면 실력은 금방 늘 수 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미래를 선도하는 통일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학생 여러분의 힘차고 밝은 미래를 항상 응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