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우 일상화되는데…일제강점기 때 쓰던 배수펌프장도

지자체 10곳 중 4곳 빗물처리대책 미흡
1928년·1955년에 설치된 배수펌프장부터
공사비 절감 위해 기준 낮춘 시설도
“법 위반 지자체 경고·기후변화 고려 대책 필요”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와 태풍 등으로 인한 수해가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10곳 중 4곳은 빗물처리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우로 침수된 차량. 뉴시스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른 우수유출 저감대책 수립 대상 지자체 총 166개소 가운데 아직 계획을 수립 중이거나 수립하지 않은 지자체가 71곳으로 나타났다.

 

자연재해대책법 제19조 및 제19조의 2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5년마다 재해예방을 위해 빗물을 가두거나 흐르도록 하는 우수유출 저감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매년 우수유출 저감시설 사업계획을 세워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현재 대책 수립 의무가 있는 9개 광역자치단체와 157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계획을 수립 중인 지자체가 42개소, 미수립 지자체는 29곳이었다. 충북 괴산(2011년)과 경북 영양(2012년), 경북 포항(2013년), 충북 옥천(2013년)의 경우 10여 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빗물처리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폭우 시 빗물을 강제로 배수할 수 있는 배수펌프장의 노후도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농촌 지역의 배수펌프장 10곳 중 7곳은 평균 내구연한인 20년을 훌쩍 넘어섰다. 경남 밀양시 수산배수펌프장은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지어졌으며, 경남 창원시 대방배수펌프장은 제1공화국 시절인 1955년에 설치돼 노후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 의원실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구연한을 두세 배 넘어서까지 그대로 설치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예산상의 사정이나 그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갈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200년에 한 번 있을 정도로 유례없는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앞으로 일상화된다면 이런 배수펌프장이 있는 지역들부터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빗물펌프장. 뉴시스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시설의 사용 기준을 낮춘 곳도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양재근린공원저류조는 당초 50년이었던 사용 기준보다 20년 낮춘 30년이 적용됐다. 이처럼 기준에 미달하는 우수저류시설은 총 29곳으로, 공사비 절감을 사유로 실제 기준보다 30년 또는 40년 빈도로 하향 조치됐다.

 

기후변화에 맞는 대책과 함께 빗물저감 시설을 관리하는 지자체에 대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헌 중부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풍수해 대책의 수준과 역량은 상당한 수준에 있지만 과거에 지어진 시설 용량이 지금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변화하는 기후 상황에 대비해 법 제도와 더불어 대응 시설에 대한 규모와 관리 매뉴얼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병도 의원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우수저류시설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행정안전부는 우수유출 저감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29개 지자체의 법 위반에 대한 경고 조치와 함께 지자체 재정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수유출 저감대책 미수립 지자체 현황 자료. 한병도 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