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노벨 과학상을 기다리며

의대는 인기과 편중·과학계 인재 부족… 환경개선 시급

‘한강 신드롬’이 뜨겁다. 노벨문학상 발표 뒤 5일 만에 한강의 작품은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K팝’, ‘K드라마’ 등 대중문화 분야에 이어 문학까지 우뚝 서면서, ‘한국 문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람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노벨상 위원회는 한강의 작품에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극찬했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 등 시대적 비극이 빚어낸 반전인 셈이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군부 독재와 분단 상황이라는 국내의 특수적 상황이 기반이 됐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기자

시대의 비극을 극복하는 한 명의 영웅적 인물이라는 서사가 현실에서 완성된 셈이다.



‘뜨거운’ 문화 분야와 달리, 국내 과학·의학 분야는 아직 불모지처럼 황량하다.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 배출국은 32개국에 이르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5일 네이처가 646명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 연령, 성별, 출신지 등 특징을 분석한 결과 평균 나이는 58세, 지역은 미국 등 북미가 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유럽 출신 연구자 수상자의 비중이 컸다. 국내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성과를 낸 훌륭한 과학자는 많다.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고(故) 이호왕 고려대 교수, 크기가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 합성할 수 있는 승온법을 개발한 서울대 석좌교수이자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현택환 단장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에 마이크로RNA를 발견한 빅터 앰브로스 교수와 게리 러브컨 교수가 선정되면서 국내 학계에서 아쉬움이 컸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의 ‘수상 기대주’로 떠올랐던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가 20여년 전부터 마이크로RNA를 연구해 생성 과정을 규명했기 때문에 같은 분야에서는 한동안 수상이 어렵지 않겠냐는 아쉬움이다.

네이처는 미국·유럽의 노벨상 독식과 관련해 과학 발전이 빨랐던 선진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과학계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해 새로운 연구성과 배출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했다. 과학상은 척박한 환경에서 이를 극복하는 ‘영웅’적 서사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몇 년째 이어진 ‘의대 블랙홀’로 인해 4대 과학기술원(KAIST·GIST·DGIST·UNIST)에 진학한 인재들이 매년 수백명씩 의대 진학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했고, 인재들은 해외에서 길을 모색한다. 그렇다고 의학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의대 1등’은 피부과에서 레이저를 쏘고 있고, 작금의 의정 갈등에 대학병원 연구실 불도 꺼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매년 관악(서울대 공대)에서 혜화(서울대 의대)로 오기 위해 수능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그리고 의대에서는 인기과인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가기 위한 경쟁을 한다.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정년과 소득에 ‘보상’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말하면, 필수의료를 하면, 의사과학자가 되면, 이공계 박사가 되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의대 증원’은 의사 수 증가로 인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일종의 채찍이다. 문제는 증원이 오히려 더 강력한 ‘의대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이 ‘채찍’이 아니라 의사과학자와 이공계에 강력한 ‘당근’이 더 시급한 게 아닐지 생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