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방송과 자택서 인터뷰 “노벨상 의미 생각할 시간 필요 소설 끝내고 연설문 작성 집중”
무크지에 새로운 산문 ‘깃털’ 공개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추억 다뤄
“지금은 주목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 상(노벨문학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해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스웨덴 언론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과 상관없이 글쓰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한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스웨덴 공영 SVT 방송의 지난 13일 보도에 따르면, 한강은 이 방송과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으며,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인 지난 11∼12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왜 축하하고 싶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 아들과 함께 카밀러(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축하했다. 축하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아버지가 딸이 세계의 상황(우크라이나 전쟁 등)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거론하자, 그는 “뭔가 혼란이 있었던 거 같다. 그날 아침 아버지께 전화드렸을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큰 잔치를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큰 잔치는 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노벨문학상 발표 당시를 다시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당시에 대해 “인터뷰할 때 장난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진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끔찍한 역사적 사건에 직면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을 통해 배울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분명히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며 “적어도 언젠가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인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웠던 것들의 아주 분명한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한강은 글을 쓰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1년에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예를 들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시간을 들여 계속 글을 쓰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빨리 끝내고 노벨상 수락 연설문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림원으로부터) 에세이를 써야 한다고 들었다. 바라건대 지금 쓰는 짧은 소설을 이달이나 내달 초까지 마무리하고 그 이후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강은 자신이 동인으로 활동하는 뉴스레터 형식의 무크지 ‘보풀’에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돌아본 짧은 글을 기고했다. 노벨문학상 발표 후 나온 첫 글이다.
‘보풀’은 지난 15일 발행한 제3호 레터에서 한강이 쓴 ‘깃털’이라는 짧은 산문을 소개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여주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추억하며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고 적었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내려간 밤, 먼저 내려와 있던 엄마는 작가에게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볼래?”라고 묻고는 작가의 손을 잡고 병풍 뒤로 가 외할머니의 “고요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어 한강은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 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고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