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 대한 공습을 확대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가자지구 등에서 인도주의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연계할 수 있다고 압박에 나섰지만 실제 개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와 친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인간방패’ 전술을 쓰고 있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지난 10일 이후 엿새 만에 공습했다. 전날 미국 국무부가 “베이루트 폭격 작전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이뤄진 공격이다.
이스라엘군은 14일에도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알 아크사 순교자 병원 부지를 공습해 피란민 텐트촌에 화재가 발생했다.
병원 뒤 텐트에 거주하던 피란민 히바 라디는 주변의 폭발음에 깼다며 영국 BBC방송에 “최악의 장면 중 하나를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란민 움 야세르 압델 하미드 다헤르는 “너무 많은 사람이 불타는 것을 보니 우리도 그들처럼 불에 탈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 공습으로 최소 4명이 숨지고 40명 이상이 다쳤다고 집계했고, 국경없는의사회(MSF)는 이보다 많은 5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14일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공습에서도 민간인이 다수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북부 도시 즈가르타의 아이투 마을의 주거용 건물을 공습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제러미 로런스 대변인은 “공습 사망자 22명 중 12명은 여성, 2명은 어린이라고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무기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서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조속히 개선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지난 13일 공동명의로 이스라엘 국방 및 외교장관에 보낸 서한에서 30일 내로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인터넷매체 액시오스 등이 이날 보도했다.
미국은 구체적인 조치로 △최소 트럭 350대의 인도 지원 물품 가자지구 내 반입 허용 △추가 통행로 개방 △인도 지원 관련 장소 및 이동에 대한 보안 강화 △작전상 불필요한 지역에 대한 대피 명령 취소 등을 꼽았다. 이스라엘에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안보 지원 시 국제 인도법 등에 부합하도록 하는 국가 안보 각서 20(NSM-20)과 미국 법에 따른 정책상 함의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이 미국이 보낸 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당국자는 로이터에 “이스라엘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서한에서 제기된 우려들을 우리의 미국 측 카운터파트들과 함께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이란 등과 3면전을 벌이면서 방공 요격미사일이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인 만큼 미국의 지원이 끊긴다면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역시 미사일 비축량이 줄어들고 있고, 특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지원 중인 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 남부 공습을 두고 충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자기 나라가 유엔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정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을 공격한 것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반박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국가 수립은 유엔 결의안이 아니라 독립전쟁에서 많은 영웅적 용사들의 피로 거둔 승리로써 이뤄진 것”이라며 “이 전쟁의 참전자 다수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이며, 여기에는 비시 프랑스 정권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하며 존속한 ‘비시 프랑스’ 정부가 유대인을 탄압했던 역사를 꼬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