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한강, 데보라 스미스 어떻게?…“국내 문학시장·비평·담론 활성화 시급”

2025년 ‘대한민국 문학축제’ 개최…해외 작가와 출판사, 노벨문학상 수상자 초청 기대
유인촌 장관 “한강 노벨상 수상 계기로 더 많은 작가 발굴해 해외 진출시킬 것”

한강(54)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정부가 전국 단위의 문학 축제를 열고, 더 많은 작가가 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6일 서울 강남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 해외 진출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2025 대한민국 문학축제’ 개최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문학주간, 한국문학관 기획 전시 등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문학 행사를 연계하고, 지역 문학관과 도서관 등도 참여하도록 해 전국 단위의 행사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서울 강남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 해외 진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린 16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 문체부 대회의실에서 화상으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국내 축제에만 그치지 않고 해외 작가와 출판사를 초청해 국내 문학 저작권의 해외 판매 확대로도 이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뮤지컬을 상영하고, 낭독극과 음악 공연, 전시, 마로니에 공원에 서점 팝업 스토어 설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정근 한국문학번역원 본부장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서울국제작가축제에도 노벨상 수상 작가를 초빙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해외 출판인 초청 사업도 열어 (국내 작품) 저작권 판매 확대로 이어지도록 하겠다. 제2, 제3의 한강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문학 비평과 담론 형성도 지원한다. 높아진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외 문학 전문가들의 한국문학 연구·비평 확대를 도모한다. 이를 위해 해마다 한국 문학 대표작가군을 추리고 이들의 관계망 사업을 뒷받침하며, 북미아시아학회와 유럽한국학협회 등에 한국문학을 주제로 한 발제를 의뢰할 예정이다. 한국 문학을 해외에 집중 조명하는 묶음 사업도 논의됐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해외에서 신청받아 수요 도서를 추천한 뒤 재외한국문화원에 보급하고, 다양한 축제를 통해 작가를 집중 조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계기로 우리가 더 많은 작가를 발굴, 번역하고 해외에 진출시킬 것”이라며 “(이들 작가가) 해외에서 박수받고, 좋은 상도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며 말했다. 아울러 “독서 진흥과 지역 작은서점 살리기, 도서관 활성화 등에 훨씬 더 많은 정책적 접근을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번역과 국제교류도 중요하지만, 먼저 국내 문학 시장과 비평·담론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다양한 책과 개성 있는 작가가 나와야 ‘제2의 한강’이 나올 수 있다”며 “물론 해외 교류나 번역도 중요하겠지만 한국어 문학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가만히 두면 시장이 확대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문학의 가장 큰 약점은 한국어 문학시장이 너무 작다는 점이다. 2000부를 팔기도 어려운데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굉장히 적고 다음 책을 낼 기회가 적다”며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시장이 확대되지 않기 때문에 문학나눔 예산 증액, 출판계 세액공제 입법, 공공대출 보상권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형엽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비평 및 담론 활성화도 해외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런데 시인·작가·비평가들이 제대로 살아 남아 활동하려면 국내에서 먼저 저변이 확대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번역 전문인력 양성에도 장애물이 적지 않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겸 번역가(영어)는 “제자들을 떠올려 보면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를 능가할 정도의 학생이 많지만 시장의 문이 너무 좁다는 점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정 교수는 “번역 고료는 20년 전과 비슷할 정도로 번역 조건은 더욱 나빠졌다”며 “번역가로는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제자들에게 번역가가 되라고 말을 못 한다”고 실정을 전했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를 번역대학원대학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애영 한국문학번역원 교수 겸 번역가(프랑스어)는 “교육 과정이 효율적이고 전문화돼 우수한 번역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학생들이 수료증을 받고 나면 기회를 얻지 못해 절망한다”며 “번역 시장에 한 번만 내보내면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데 그 길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아카데미가 아닌 정식 교육기관이 되면 부설연구소도 신설할 수 있고 해외진출을 겨냥한 새로운 담론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