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설들은 내면의 은밀한 경험이 역사와 어깨를 마주하고, 고통과 사랑이 눈밭에서, 숲에서, 그리고 격정의 불길 속에서 흔적의 길을 남기는, 가슴 아린 작품들입니다.” 아마도 프랑스어 특유의 리드미컬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의 문장은 악몽마저도 (서정적인) 꿈처럼 느끼게 만들죠.”
한강의 소설을 두 권이나 번역한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프랑스어로 공동 번역한 번역가 겸 편집자 피에르 비지우의 이야기다.
오정희의 단편소설 ‘바람의 넋’을 읽으며 한국 문학에 매료됐다는 그는, 2019년부터 한국 작가의 작품을 주로 출판하는 마탕칼름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지난 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국내외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지만, 작품을 자국의 언어로 번역 소개하는 번역가만큼 한강 문학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굳이 기자가 취재한 내용도 아닌, 타사 기사의 내용을 길게 인용한 이유이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싸고 일부 보수 단체 및 인사들이 벌이는 이념 공세와 생트집이 점입가경, 목불인견이다. 이들은 “역사 왜곡으로 쓴 소설” “문학의 이름으로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한다”고 한강의 작품을 공격하고, 작가에 대해선 “좌파” “좌빨”이라고 시뻘건 낙인을 찍는다. “노벨상 가치의 추락” “노벨문학상이 수상하다”고 노벨문학상을 폄훼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에선 노벨문학상 수상에 반대한다며 수상 취소를 청원하는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주한스웨덴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한강 작가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연결시켜 진영 공세도 편다.
이들이 반발하는 것은 주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 등에 담긴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에 대한 기억, 고발과 증언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근원에는 국가 폭력을 인정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사안을 과도하게 좌우 이념대립 또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립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자리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상 위원회의 평가처럼, 한강의 작품들은 법률과 연구 등으로 밝혀진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기억과 공감, 애도를 보내는 문학이다. 이념의 호불호나 진영 논리를 들이댈 게 아니다. 더구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과 삶에서 뿌리 뽑히고 쓰러진 우리 이웃을 향한 기억과 애도, 슬픔의 통곡 아닌가.
‘아시아 여성 작가여서 주목받은 게 아니냐’는 일각의 시각을 거론한 한국 특파원에게 “어떤 분류나 트렌드에 맞춰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비지우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그의 문학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성에 호소합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아시아 문학의 승리도, 여성 문학의 승리도 아니죠. 문학 그 자체의 승리이며, 문학의 지평을 넓힌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