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트럼프 청구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집권하자마자 한국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올리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했다. 그해 7월 안보 관련 회의에선 “한해 35억달러를 쓰면서 2만8000명의 병력이 (한국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데려오자”고도 했다. 참모들은 “3차대전을 막기 위한 것”, “철수 땐 항모전단 추가 배치 등으로 비용이 열 배 더 들 것”이라며 기를 쓰고 미군의 전략적 가치를 설명했다. 참모들의 만류에도 트럼프는 이듬해 말 협정 만료를 앞두고 철군을 위협하며 분담금 50억달러 증액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한·미는 1991년 방위비분담협정을 맺고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의 일부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이 떠안는 건 한국인 인건비와 훈련장·숙소·교육·작전·통신시설 등 건설비, 탄약 저장·정비 등 군수지원비다. 협정은 3∼5년 단위로 체결되는데 분담금은 초기 1073억원에서 해마다 늘어났고 트럼프 집권 때인 2019년 1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양국은 2026년 한국분담액을 1조5192억원으로 전년보다 8.3% 늘리고 2030년까지 매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연일 방위비 폭탄 발언을 쏟아낸다. 그는 15일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은 머니 머신(부유한 나라)”이라며 “내가 백악관에 있으면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를 지출할 것”이라고 했다. 종전 합의액의 9배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제는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2000명으로 부풀리며 “한국이 돈을 내지 않는다.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이상 이용당할 수만은 없다”고도 했다. 재집권 때 종전 합의를 깨고 다시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트럼프의 폭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한 사이라며 직접 만나 핵 협상을 벌이겠다고 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핵 동결·감축을 조건 삼아 제재를 해제하는 악몽이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해 정교한 외교·안보전략을 짜고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 핵잠재력 확보 등 비상한 대책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