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시작부터 동세대 작가와 달랐다” [심층기획-논픽션 한강 격류 제4화]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여수의 사랑」 첫 부분)

 

시적이고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 여는 한강의 단편소설 「여수의 사랑」은, 자신의 결벽증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떠난 월세방 동숙자 자흔을 찾아서 진저리나는 여수를 향해 떠나는 정선의 이야기다. 정선은 어릴 때 동생을 뿌리치고 달아나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심한 결벽증과 위경련을 겪고 있었다.

 

1996년 여수를 찾은 한강. EBS 영상 캡처.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몰라요. 잊을만하면 꼭 이렇게 되고 말아요……아무 이상이 없다는 군요. 아무 병도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요. 난 아파요. 정말로 아프단 말입니다.”(「여수의 사랑」)

 

동숙자였던 자흔 역시 여수발 기차에 실려와 서울역에 버려진 상처가 있었다. 조심성도 없고, 지저분하고, 불결했으며, 무엇보다 내일의 희망이 없었다. 정선은 결벽증이 있는 자신과 맞지 않아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 그런 자흔마저 떠난 것이다. 정선은 오래 전에 떠나온 진저리치는 고향 여수로 향한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여수의 사랑」 끝 부분)

 

그는 왜 여수를 배경으로 작품을 쓴 것일까. 소설집을 발간한 이듬해 방송사와 함께 한 문학기행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여수항과 남산동 등을 둘러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수라는 이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수(麗水)가 아름다운 물이라 그래서 이 고장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여행자의 우수(旅愁)라는 한자를 써서 여수가 되기도 하는 그런 중의적인 것 때문에 여수를 택했어요.”(진상명, 2024.10.16)

 

#삶의 고단함과 방황 담은 초기작

 

「여수의 사랑」을 비롯해, 한강은 등단 이후 작품을 꾸준히 써나갔다. 작품들은 상실감과 파괴적인 체념, 눅눅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띈다. 대체로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살피면서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그렸다고, 그는 회고했다.

 

“첫 단편집 『여수의 사랑』에 묶인 소설들을 쓰던 시기에는 고단함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삶을 버티고, 떠나기를 몰래 꿈꾸고, 저마다 홀로 피로와 시련을 감당해내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였습니다.”(김유태, 2024.10.11)

 

“말로 다 옮기기 힘든 복잡한 감정.” 그는 출판사로부터 ‘저자 증정본’으로 자신의 첫 소설집 다섯 권을 받아들었을 때, 이 같은 감정이 들었다. 그는 저자증정본 다섯 권을 가방에 넣고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도저히 책을 꺼내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혼자서 일층 카페에 앉아 있었던 여름날 오후였다(「기억의 바깥」). 그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다.

 

“처음엔 발표한 소설들이 한 권 분량이 됐으니까 책이 나와야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작가의 말」을 쓰려니까 글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이 두서없이 떠오르더라고요.”(손정숙, 1995.8.10.)

 

1995년 여름, 표제작 「여수의 사랑」과 등단작 「붉은 닻」을 비롯해 등단 이후 창작한 단편소설 6편을 엮어 자신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소설집에는 표제작과 등단작 이외에도 「질주」, 「야간열차」, 「진달래 능선」, 「어둠의 사육제」가 담겨 있었다.

 

소설들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인물들 역시 이러저러한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인규(「질주」),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동생의 삶까지 살아내야 하는 동걸(「야간열차」), 백치 같은 여동생을 버리고 고향에서 도망친 정환(「진달래 능선」), 집과 고향을 버리고 고아처럼 떠돌며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영진과 인숙(「어둠의 사육제」) 등등….

 

손정숙은 기사에서 “소설에 나타난 뜻밖의 서글프고 어둡고 한스러운 정조에 깜짝 놀란다”며 “단정하면서도 처참한 문장들이 그물처럼 이어지면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한강 소설의 특징”(손정숙, 1995.8.10)이라고 보도했다.

 

#“장편은 질문에 끝까지 가는 것”

 

첫 소설집이 나온 이후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 샘터사를 그만두었다. 출판사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던 어느 토요일, 그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까지 점심도 거르고 두 시간 가까이 최인호 작가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강아, 소설을 맨 앞에 둬야 한다. 그러려면 착하게 살려고만 하면 안돼. 선의의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아름다운 것에 대하여-최인호 선생님 영전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하나의 질문하는 방법이라면, 장편소설은 그에게 질문을 끝까지 완성하는 것. 답이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었다.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그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완성해 보는 그런 거예요. 질문의 끝에 어떻게든 도달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겨나고요. 그러면 다음 소설에`서 그 질문을 이어가고 그래요. 질문을 완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그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요.”(신연선·오은, 2021. 9. 23)

 

그 사이 전업으로 글만 쓰기 위해서 교직을 그만두고 상경했던 아버지 한승원과 어머니 임감오가 1997년 장흥 바닷가로 내려갔다. 1980년 상경했으니 17년 만의 귀향이었다. 아버지는 장흥의 집을 ‘해산토굴’이라고 명명하고 이곳에서 집필 생활을 이어갔다.

 

1998년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문학동네)을 발표했다. ‘검은 사슴’은 바윗돌을 씹어 먹고 산다는 가상의 동물. 지하를 벗어나는 것을 희망하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사람들에 의해 뿔과 이빨까지 모두 뽑혀 흔적도 없이 죽는 운명을 타고 났다. 소설은 바로 이 동물을 닮은 사람들,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 눈에는 격렬한 눈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얼굴이 오래된 귤껍질 같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기도와 폐가 바싹 구운 싸구려 말과자처럼 꼬였다. 눈물은 눈에서 뿐 아니라 온 몸뚱이의 살에서 뻘뻘 흘러나왔다. 끈적끈적한 사지가 방파제의 콘크리트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커다란 손 하나가 내 몸뚱이를 집어올린 것은 그때였다. 반항하는 내 뒤틀린 몸을 손은 차근차근 분해하기 시작했다. 물컹한 살갗을 비집고 흰 척추와 갈비뼈를 추려내는 손놀림은 사뭇 자연스러웠다. 눈도 귀도 코도 녹아버린 나에게 손의 주인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는 것이 이상했다.”(『검은 사슴』, 11쪽)

 

소설은 이 같은 인영의 흉몽으로 시작한다. 잡지사 기자 인영은 같은 건물에 있는 제약회사 직원 의선이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달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며칠 뒤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찾아온 그녀를 자기 방에 머물게 해 준다. 인영의 대학 후배 명윤이 의선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의선은 세 번째 가출에서 종적을 감춘다. 명윤은 의선이 어렴풋이 기억해내던 ‘황곡’이란 곳으로 그녀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인영은 탄광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 종욱을 취재하러 출장을 떠나면서 시간을 쪼개서 의선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자랐고, 바로 그 어둠으로 인하여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그 신령한 푸른빛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나는 투정하거나 심심함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검은 사슴』, 321쪽)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발표한 뒤, 그는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 아이오와로 날아갔다. 3개월간 아이오와대학의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때 그는 주로 제3세계에서 온 시인과 소설가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한 달쯤 발길 닫는 대로 여행을 이어갔다. 이때의 경험을 담아서 그는 2003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펴냈다.

 

#“고전적 서사와 진중한 문장”…동세대 작가와 다른 출발

 

“한강의 초기작들은, 인물들이 상처를 대면하고 그를 확인하는 순간에 결말을 맺는다. 인물들의 남은 삶은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한강은 이 과정을 소설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외면하려고만 하던 과거의 상처를 직시함으로써 이를 이겨낼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김선희, 2013.8)

 

소설집 『여수의 사랑』이나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비롯해 한강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주류를 이룬다. 상처의 근간에는 부모의 죽음이나 형제자매 죽음이 자리하고, 고아 의식을 지닌 인물도 자주 등장했다. 남성이 많고, 여성 인물들은 흔적만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사 역시 인물들이 상처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상처나 욕망을 대면하는 순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많았다.

 

한강의 이 같은 초기 작품 경향과 스타일은 같은 세대 작가들의 소설 경향과 상당히 달랐다. 즉,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빈곤이 교차한 19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이 대체로 가볍고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의 서사적 형식이 강한 반면, 한강은 가난하고 “깊은 물속에서 힘겹게 숨을 참는 듯한” 어두운 정서를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현실 인식을 담고 있고, 문장 역시 진중했다. 동시대 신세대 작가들보다는 오히려 고전 세대와 더 가까운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 김선희(2013.8)의 분석이다.

 

“한강은 그가 등단한 (19)90년대라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문단의 흐름과는 다르게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소설을 쓰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해체적이거나 영상적이거나 키치 스타일이 범람하는 1990년식 포스트모더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고전적인 스타일은 역설적으로 낯설게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제5화에서 계속)

 

*참고문헌은 연재가 끝난 뒤 정리해서 한꺼번에 게시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