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은 동남풍, ‘염갈량‘은 비 예보...에르난데스 3.2이닝 소화는 18일 4차전 취소까지 고려한 최선의 계책

소설 ‘삼국지연의’의 3대 대전으로 불리는 적벽대전. 손권 진영의 도독 주유가 80만에 달하는 거대한 조조군을 한방에 물리치기 위해 세운 계책은 화공. 그러나 겨울이었던 당시 장강에 부는 바람은 서풍. 불을 질렀다가는 아군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상황이었다.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9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 LG 에르난데스가 삼성 김영웅을 삼진아웃 시키며 1-0 승리를 확정짓자 포효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에서 천하의 기재 제갈량이 등장한다. 자신이 바람의 방향을 동남풍으로 바꿔주겠다고. 제갈량은 동남풍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이지만, 사실 제아무리 뛰어난 제갈량이라고 해도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재주는 없다. 장강 주변의 날씨를 잘 살폈고, 삼한사온에 따라 종종 서풍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것을 예측해낸 것이다. 제갈량의 장담대로 바람의 방향은 바뀌었고, 주유의 화공은 대성공을 거두며 조조군은 대패하고 만다.

 

갑자기 제갈량의 동남풍을 얘기를 한 이유가 있다. 제갈량처럼 지모가 돋보이는 운영을 한다고 해서 ‘염갈량’이라는 별명이 붙은 LG 염경엽 감독이 비 예보를 활용한 투수 운영을 통해 벼랑 끝에서 탈출한 장면에서 제갈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LG 염경엽 감독이 1대0 승리 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염 감독이 이끄는 LG는 대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1,2차전에서 홈런포 8방만 내주며 4-10, 5-10으로 패한 뒤 서울로 올라왔다. 17일 홈인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3차전마저 내줄 경우 올 시즌은 그대로 종료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렸다.

 

염 감독의 ‘배수진’은 팀내 불펜투수 중 가장 좋은 구위를 보유하고 있는 엘리저 에르난데스(베네수엘라)를 길게 쓰는 것이었다. KT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5경기에 모두 출격해 7.1이닝 무실점 1홀드 2세이브를 거둔 에르난데스는 1,2차전 패하는 과정에서 등판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 11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 이후 5일 간 푹 쉬었다.

 

선발 임찬규가 5.1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만 내주며 무실점으로 제 몫을 다 해내자 염 감독은 6회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에르난데스를 올렸다. 경기 전 염 감독은 “오늘 에르난데스는 두 번째 투수로 쓴다. 선발투수로 쓰듯 긴 이닝도 맡길 계획”이라고 했다. 염 감독의 공언대로 에르난데스는 6회 1사부터 경기 끝까지 던졌다. 3.2이닝 동안 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줬지만 탈삼진 5개를 솎아내며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였다. 특히 승부를 마무리지은 9회엔 박병호와 대타 이성규, 김영웅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KT와의 준플레이오프에 5경기에 모두 출격하며 ‘엘동원’(엘리저+최동원)이라 불리는 별명다운 투구였다.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LG 에르난데스가 8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삼성 디아즈를 땅볼 처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스1

경기 뒤 승장 자격으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염 감독은 “오늘 에르난데스를 길게 끌고 간 것은 그를 오랫동안 마운드에 올리는 게 승리 확률을 가장 높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임찬규와 에르난데스, 두 명의 투수로 끝내는 게 계획이었다”라면서 “에르난데스는 내일(18일)은 못 나온다. 그런데 내일 비가 예보되어 있지 않나. 그것까지 계산한 활용이었다. 우리나라 기상청을 믿는다”라고 웃었다. 4차전이 취소되어 하루 순연될 것까지를 예상한 에르난데스의 활용법. 그의 별명이 왜 ‘염갈량’인지를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염 감독의 바람대로 18일 오전 서울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비가 과연 야구를 취소할 만큼의 세찬 비가 되어줄까. 그렇게만 된다면 염 감독은 4차전에서도 에르난데스를 기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