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일축에도 또다시 ‘북한 참전설’ 공론화에 나섰다. 이번에는 북한이 무려 1만여명의 병력을 파병 준비중이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보당국에 따르면 지상군, 기술자 등 여러 종류의 인력을 모두 합해 북한이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와 맞서 싸울 병력 총 1만명 가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찾은 자리에서는 “북한 내에서 병사 1만명을 준비시키고 있다는 첩보가 있으나 아직 이 병력이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로 이미 이동한 것은 아니다”라고 추가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력 이동에 관한) 정보가 확보되면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이 이미 전술 인력과 장교들을 (러시아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로 보냈다”고 주장했으나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가 병력 손실이 커서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것이고, 러시아 내 동원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걱정한다는 정보가 있다”며 “이에 다른 국가를 참전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 국가’가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아주 긴급한 문제이며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면서 “미국, 그리고 조금 전 EU 정상들과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북한이 전쟁에서 숨진 러시아인을 대체하기 위해 러시아 공장 등에 군 인력을 보냈다”고 밝히는 등 연일 북한의 파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일축 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북 파병설에 대한 진실 공방을 지켜보는 서방은 “현 단계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우려스럽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북한군이 전투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으나 북한이 러시아를 (무기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이날 북 파병설과 관련한 외신 보도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북한 군인이 전장에 있는지 확인된 정보는 없지만, 이미 그런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이날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가 ‘동맹의 산업기반 강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한미 뿐 아니라 다른 동맹국, 나토 회원국과 함께 심각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조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EU와 나토를 잇달아 찾은 자리에서 자신의 ‘승리계획’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승리계획에는 나토 가입 초청이 핵심 요건으로 포함돼 있다. 나토 규정상 ‘가입 초청’은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 필요한 첫 번째 절차로 3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토는 전쟁 중 가입 절차를 개시할 경우 러시아와 나토 간 직접적 갈등요인이 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나토의 주축인 미국이 회의적인 데다 내달 미 대선 탓에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이 무산될 경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핵능력을 추구할 것이라는 입장까지 내비치는 상황이다. 그는 이날 나토 가입 초청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어떤 종류의 동맹 체결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이같은 의사를 밝혔으며 “정당한 주장”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키이우인디펜던트 등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보호할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어떤 종류의 동맹에 가입해야 한다. 나토를 제외하면 우리는 그런 효과적 동맹을 알지 못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시절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1994년 12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미국·영국으로부터 영토·주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핵무기 보유’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자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고 있지 않다. 오늘 내 말은 나토 가입보다 더 강력한 안전보장 방법이 없다는 뜻”이라며 진화에 나섰다.